에드워드 리 셰프는 ‘스모크&피클스’에서 한국의 석쇠부터 미국 남부의 훈연 기계까지 자신은 온통 ‘연기’에 둘러싸여 생활해 왔다고 말한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Grant Cornett, Dan D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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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예술적인 것이 요리이고 그다음이 글인 것 같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요리 경쟁 프로그램 ‘흑백요리사’(2024)로 준우승을 한 셰프 에드워드 리의 요리책 ‘스모크&피클스’(위즈덤하우스)가 나왔다. 2013년에 나온 그의 인생 첫 요리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한국’에 나와서 기쁘다. 제목과 이름이 한글로 쓰여질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감격스럽다. 11년 전 나는 (셰프) 여정을 시작한 젊은 세프였다.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국’이라고 또렷하게 발음하면서 소감을 밝혔다. 책 출간을 기념해 그는 7일 오전 미국 워싱턴 디시의 자택 지하 테스트키친에서 한국 기자들과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 줌(ZOOM)을 통해 간담회를 열었다.
책은 그가 자주 받는 질문 ‘무엇을 요리하시나요’에 대한 긴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은 9·11 테러로 뉴욕의 식당을 접고 무작정 떠난 여행 끝에 정착한 남부 켄터키에서 탄생했다. 그곳에서 결혼하고 딸도 태어났다.
“책이 나온 주에 딸이 태어났다.” 그는 책에서 남부에 자신이 ‘입양’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한 바퀴를 빙 돌아 결국 한국인 이민자 자녀로서의 나 자신을 재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남부 음식은 한국 음식과 많은 것이 비슷했다. 제목에 나와 있는, ‘훈연’(스모크)과 ‘절임음식’(피클)이다. 그는 훈연한 맛이 ‘감칠맛’에 이은 여섯 번째 맛이라고 하면서, 어린 시절 한국식 석쇠에서부터 훈제 베이컨·흑맥주(맥아를 고열로 태워 발효)·버번위스키(까맣게 탄 오크통 안에서 숙성)까지 자신이 ‘연기’에 둘러싸여 생활해왔다고 말한다. 훈연 요리 옆에 있는 것은 절임음식이었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스모크&피클스’(위즈덤하우스)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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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미국 남부, 스모크-피클로 연결해나가는 것이 그의 요리 철학이다. 그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결승전에서 서툰 한글 글씨로 메모하고 이것을 읽어서 화제가 되었다. 당시 그는 한국 이름 ‘균’을 밝히며 자신을 ‘비빔인간’이라고 지칭했다.
‘비빔’ 역시 재료 간의 연결과 조화로 이루어진다. 시간 역시 비벼져 들어간다. “뭉근하게 끓는 냄비를 휘젓는 이탈리아 사람의 팔에서 볼로네제 소스만 분리해낼 수” 없듯, 전쟁터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온 할머니로부터 그에게 전해져오는 그 모든 것이 그 안에 혼합되어 있다. 그는 이것을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온화한 표현”이라며 미국 남부의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말을 호출해낸다.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과거가 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 비빔은 ‘최고’를 향한 그의 방향성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책에서 “돼지껍질을 좋아하고 생참치를 좋아한다면 한꺼번에 넣으려고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젊은 시절의 그는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을 기다려 책을 썼다.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 글과 마주 앉았다. 그가 말하는 요리와 글의 다른 점은 이렇다. “식당은 손님이 오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야 하는 5시를 향해 카운트다운하는 데 반해, 글은 시간이 다가 아니다. 10시간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하기도 하고 30초 안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기도 한다. 쓰고 읽을 때는 시간이 완전히 멈춘 것 같다. 글과 독서는 온전히 그 과정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즐기고 있다.”
시간 조절은 조리의 황금률이듯이 그의 인생에서도 중요하다. 그는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열 계획이 있냐는 기대 어린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답했다. “영원히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있고 에너지를 충분히 거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냥 열어두기 위해서 식당을 여는 그런 셰프는 되고 싶지 않다.”
책의 각 장 앞에는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들어온다는 한국 미신과 ‘냄비는 항상 시계 방향으로 젓고 오른쪽 신발 끈을 먼저 묶는다’는 등의 징크스 등이 하나씩 쓰여 있다. ‘흑백요리사’에서도 그가 지킨 징크스가 있었다. “한국에 신발을 많이 가져왔다. 첫날 늦게 일어나서 별로 편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 요리에 참여했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편한 신발을 두고 그 신발을 끝까지 죽 신었다.”
그의 또 한가지 ‘미신’이라면 ‘계속해서 도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요리를 만들겠다. 같은 요리를 만드는 셰프가 되고 싶지는 않다.” ‘흑백요리사’의 ‘두부 지옥’ 미션을 통해 ‘창발력’의 끝을 보여준 그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맛보다 이야기”라고 했다. “레시피대로 조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예술가라면 음식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물론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위해 매일 노력한다.”
그가 지난해 말 워싱턴 디시에 연 식당도 그러한 도전의 하나다. ‘시아’는 한국요리가 바탕이 되는 파인다이닝 식당으로 ‘제로 플라스틱, 제로 웨이스트’를 표방한다. “레스토랑이 환경 보존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실험”하는 곳으로, 이러한 실험이 식당 수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쌓게 된다. 그의 에세이집 ‘버터밀크 그래피티’와 버번위스키의 멋을 다룬 ‘버번랜드’도 올해 출간 예정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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