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중단한 지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에서 나온 공수처 차량들이 윤 대통령 지지 집회 옆을 지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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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식 | 핀란드 국립과학기술원 박사
12·3 내란사태 때문에 우리나라가 혼돈에 빠져있다. 전대미문의 내란, 친위 쿠데타 때문에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고, 유럽 사람들도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우리나라에 주목한다.
주변 핀란드 동료와 친구들이 놀라는 부분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어떻게 한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나는가? 둘째, 어떻게 시민들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결집하여 계엄군에 맞서고 국회는 반나절도 안 돼 계엄을 해제했는가? 셋째, 왜 이렇게 내란에 동조하고 지지하는 세력이 많은가? 필자가 지금 걱정하고 주목하는 것은 세번째다. 내란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고, 명백히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이다. 그럼에도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거의 30%가 내란을 일으킨 정부와, 이를 비호하는 집권 여당을 지지한다. 심지어 태극기 부대라고 하는 사람들은 계엄이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멍청하기 때문이다. 이건 필자가 한 말이 아니라,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진단이다. 그는 나치가 지배하던 시대, 나치에 저항하다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왜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독일이 나치의 손에 들어갔는가를 고민했고, 그가 내린 결론은 독일 국민이 멍청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멍청함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멍청함은 악함보다 나쁘다고 생각했으며 또 권력은 멍청함을 필요로하며 인간은 권력 앞에 스스로 자율성을 포기하고 기꺼이 멍청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멍청함을 연구한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치폴라는 멍청함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멍청함은 교육 수준, 재산,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다. 둘째, 멍청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자신 역시 이득을 보지 못한다. 셋째, 멍청한 사람들의 파괴력은 사회에서 권력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악함은 우리가 인정하는 순간 저항하게 되지만, 멍청함은 이를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멍청함은 교육을 통해 극복할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극단적으로 보던 것만 보며,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멍청함은 자기 객관화를 바탕으로 여기서 빠져나가려는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 물론 자신이 멍청한지도 모르는 멍청이들도 많고, 우리를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멍청하지 않은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의 수를 과소평가하지 말고, 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싸워야 한다.
우리나라는 혼돈에 빠져 있고, 세계는 지금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희망이 될지, 아니면 독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지 기로에 서 있다. 명백히 이는 진보·보수가 정당한 논리로 정쟁하는 문제가 아니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문제도 아니고, 지역 간 문제도 아니다. 명백한 옳고 그름이 있는 문제고 우리는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테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의 위기에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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