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9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시민이 ‘우박맞은 보조개 사과’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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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언어의 힘은 위대하다. 한 끗 차이로 무의식상에서 인상을 결정하고, 한번 굳어진 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언어를 두 눈으로 직시했을 때, 나아가 음성으로 발음했을 때,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될 때까지. 언어가 형상화하는 인상 또한 함께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이 브랜드를 개발할 때, 가장 곤두세우는 화두는 브랜드 네이밍이다. 소비자가 제품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첫번째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때 마케팅 관계자가 필수로 거치는 단계는 바로 ‘부정 연상’ 점검이다. 부정적인 요소는 무의식상에서 인상 형성에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여기 언어의 부정 연상으로 인해 본래 가치보다 낮게 평가받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존재들이 있다. 못난이 농산물이란 상품 외관이 시장 기준과 다른 규격을 지닌 농산물을 지칭한다. 쉽게 말해 ‘외모(규격) 심사’에서 탈락한 것들이다. 맛과 영양 면에선 손색이 없지만, 표면적 흠집 혹은 다른 생김새로 인해 비(B)급 상품으로 여겨진다. ‘못났다’라는 어감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어 하자를 더 크게 인식하는 것이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해 못난이 농산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그러나 여전히 못난이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 대비 상대적 열위에 있다는 인식은 은연중에 박혀있다.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흠집이 났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은 연간 5조원에 달한다. 막대한 경제 성장은 과일의 과잉 공급을 가능케 했고, 세계 곳곳에서 낭비가 출현하고 있다. 과일값의 고공행진은 어찌 보면 그동안 인지할 새도 없이 만연했던 낭비를 인식하고 행동을 바로잡을 기회다. 폭포수처럼 흘러넘쳤던 자본과 물질에 가려져, 졸졸 새어나가다 버려지는 못난이를 마주하자.
최근 여러 곳에서 ‘못난이’라는 이름을 탈피하고, 대상의 개별적 특성을 반영한 긍정적 어휘를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사용하고 있다. ‘보조개 사과’, ‘춤추는 대파’와 같은 것들이다. 언어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긍정적인 인상을 연상케 하는 명칭은 소비자의 구매 의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못난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기후위기가 도래한 시점에서, 낭비를 줄이는 긍정적인 바람이 될 것이다.
이름은 곧 정체성이다. 기존에 못난이로 일컫던 농산물에 어떠한 정체성을 심어줄 것인가? 그 고민의 산출물이 바로 못난이의 새 이름이 될 것이다. 즉 명실상부라는 말처럼 대상의 속성을 정확히 드러내면서도, 왠지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은 표현은 피하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필자와 동료들이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37명의 응답자 중 실제로 사과를 구매할 때 ‘보조개 사과’와 같이 특징을 반영하는 긍정적 명칭의 상품을 구매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41.6%) 그 뒤를 ‘맛난이 사과’(38.7%)와 ‘못난이 사과’(19.7%)가 이었다. 상품의 이름이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 역시 86.9%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름 따라 산다는 말이 있다. 본뜻은 그 이름의 뜻대로 팔자가 펼쳐진다는 의미다. 한편, 우리는 제품을 구매할 때 그 이름을 보고 산다. 부정적 인상을 연상케 하는 ‘못난이’를 벗어나, 긍정적 인상을 연상케 하는 새 이름을 붙이는 것은, 못난이 농산물의 인식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인식 개선은 곧 소비자의 구매의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못난 것이 아니다. 단지 개성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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