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지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았다. 새해를 불과 사흘 앞둔 아침에 전해진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그런데 놀람과 동시에 강한 기시감이 스쳤다. 어쩐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작년 6월의 화성 리튬전지 공장 화재, 그보다 앞선 오송 지하 차도 참사, 그리고 더 과거의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까지. 왜 어떤 사고들은 서로 닮아있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는 저서 ‘사고는 없다’에서 ‘사고’라는 단어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견되거나 예방될 수 없다는 잘못된 암시를 준다고 지적한다. 국토부는 제주항공이 2020년 자동항법장치 고장을 알고도 운행을 강행한 것으로 보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한 안전 관리와 관련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담은 고발 성격의 글들이 이번 참사가 벌어지기 이전에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또한 공항 주변의 새 떼가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그 당시 착륙 허가가 어떻게 내려졌는지, 나아가 철새 도래지에 공항이 세워진 배경은 무엇인지, 왜 활주로 끝에 콘크리트 둔덕이 있었는지, 짙은 의문만 남는다. 정말 이번 참사가 단순히 불행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예견된 비극이었을까. 결과적으로 사고를 막을 기회는 모두 지나쳐 버렸고, 우리는 또다시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문득, 우리가 과거에 일어난 참사들의 원인을 끝까지 밝혀내고 완전히 극복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의 본질은 흐려지고, 논란은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되며, 대중의 관심은 서서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사고’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고, 그 때문에 반성 없이 유지된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대형 사고’를 계속해서 일으켰다.
제시 싱어는 “사고는 설계를 할 줄 몰라서 생기는 문제도, 규제를 할 줄 몰라서 생기는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규제가 사고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고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다. 그러니 사고를 막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사고가 일어나게 두려는 강력한 사람들을 제어할 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사실 해법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시스템은 철근이 아니다. 사람이 시스템을 만든다. 이 시스템은 상당 부분 권력과 직결된다. 사람의 의지가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안전을 돈과 저울질하는 사람들을 끈질기게 찾아내 꾸짖어야 한다. 단순히 처벌을 넘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욕망의 방향을 돈이 아닌 국민의 안전으로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항공사는 사고 비행기 이력과 관련해 “사고 난 적 없고 정비 프로그램상 이상 징후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런 말보다는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어떤 조건들이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하나 철저히 조사하고,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결함과 문제의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더 이상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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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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