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둘 땐 언제고… 환심사기 경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과거 날을 세웠던 미국 ‘빅테크’ 거물들이 태세 전환에 나서고 있다. 과거 테크계 인사들은 주로 친(親)민주당 성향을 띠었으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이번 트럼프 정부에 대거 등용되자, 차별받을 것을 우려해 트럼프의 환심 사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왼쪽부터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샘 올트먼 오픈AI CEO, 팀 쿡 애플 CEO. /AP·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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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20일)을 앞두고 미국 ‘빅테크’ 거물들이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골적인 태세 전환에 나서고 있다. 1기 트럼프 정부 전후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온 기업들까지 거액을 기부하거나 회사 정책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최측근으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대거 트럼프 정부에 등용되자, 여기에서 소외된 인사들이 차별받을 것을 우려해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에선 권력의 방향이 바뀌면 곧바로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을 “풀보다 빨리 눕는다”고 표현하는데, 미국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스레드 등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마크 저커버그(41)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페이스북의 ‘팩트 체크’ 기능을 없애겠다고 7일 밝혔다. 가짜 뉴스를 걸러낸다는 취지로 2016년부터 외부 기관들과 협력해 거짓이라고 판단한 글들의 노출을 제한한 것으로, 보수 진영 의견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저커버그는 “팩트 체커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편항돼 신뢰를 얻기보다 더 많이 망가뜨렸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차단하는 데 이용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X가 도입한 ‘커뮤니티 노트’(의견 달기) 기능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진영이 눈엣가시로 여겼던 ‘팩트 체크’를 저커버그 스스로 도입 9년 만에 폐기하는 것은, 노골적인 비위 맞추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훌륭한 결정”이라고 화답했다.
친(親)민주당 성향으로 1기 트럼프 정부와 앙숙 관계였던 저커버그는 최근 가장 극적으로 태세 전환에 나선 인물로 꼽힌다. 지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에 불복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건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은 트럼프 계정을 2년간 중지시켰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트럼프는 “페이스북을 국민의 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직후 저커버그는 트럼프 개인 저택 마러라고를 찾아 만찬을 했고, 취임식에 100만달러(약 14억5000만원) 기부 의사를 밝혔다.
메타 고위직엔 트럼프 측근과 보수 진영 인사들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지난 6일 메타는 트럼프와 머스크의 측근으로 알려진 종합격투기 단체(UFC) 회장 데이나 화이트를 이사진으로 영입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수석 고문을 지낸 조엘 캐플런 메타 공공 정책 부사장을 사장급(글로벌 정책 책임자)에 임명하기도 했다. 캐플런이 있던 자리는 부시 행정부 연방통신위원장을 지낸 케빈 마틴이 임명됐다.
1기 트럼프 정부에 날을 세웠던 제프 베이조스(61) 아마존 창업자도 일찌감치 ‘줄 대기’에 합류했다. 지난 5일 아마존은 트럼프 당선인의 배우자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제작을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올해 말~내년 초 상영을 앞두고 있으며, 멜라니아 트럼프가 제작 총괄을 맡는다. 아마존은 이 다큐멘터리를 자사 스트리밍 플랫폼 ‘프라임 비디오’에서 독점 상영할 예정이다.
베이조스도 1기 당시엔 트럼프 정부와 앙숙이었다. 그는 2013년 개인 자금으로 워싱턴포스트(WP)를 인수했는데, 줄곧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냈다. 이에 트럼프는 아마존이 제대로 된 세금을 내지 않아 미국 경제를 착취하고 있다며 ‘아마존 때리기’에 돌입했고, 둘 사이는 더욱 악화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WP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선 이후 베이조스는 “트럼프는 지난 8년 동안 더 차분해졌고 성장했다”고 평가했으며, 트럼프 취임식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WP에선 이 같은 베이조스의 태세 전환을 풍자하는 만평이 게재를 거부당하자 만화가가 퇴사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도 트럼프 취임 위원회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샘 올트먼은 일론 머스크와 오픈AI를 공동 창업했지만 내부 갈등을 겪다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다. 오픈AI의 비윤리성을 줄곧 지적해온 실세 머스크가 이를 겨냥한 규제 등 복수에 나설 것을 우려한 ‘울며 겨자 먹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팀 쿡 애플 CEO는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지만,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전략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 팀 쿡은 트럼프와 직접 통화하는 사이로, 최근 개인 돈으로 100만달러의 기부금을 냈다. 지난달엔 마러라고를 찾아 유럽연합(EU)이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에 부과한 반독점 과징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트럼프의 상대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5000만달러(약 726억원)를 기부했던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지난달 트럼프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4일 트럼프 당선 이후 약 3000억원에 달하는 기부금 행렬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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