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10 (금)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88] 무리(無理)의 시대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리(理)’는 본래 ‘옥돌[璞]을 갈아 옥을 만들다’라는 뜻의 문자다. 원석을 다듬어 보석을 만들듯 사물을 관찰(해석)하고 가공하는 인간의 행위에 착안하여 고도의 정신 작용 또는 거기서 도출되는 질서, 법칙 등의 의미가 파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理는 ‘기(氣)’와 함께 성리학의 중심 개념이지만, 공자 당대에는 理에 그러한 뜻이 없었다. 공자의 어록인 ‘논어(論語)’에서 理를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이다.

유가에서 理가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철학적·추상적 개념으로 본격 등장한 것은 순자(荀子)에 이르러서이다. 순자는 자연의 순리, 인간의 행위로 마땅하거나 옳은 것 등을 理로 개념화하면서 理에 입각한 정치·도덕론을 설파하였다. 만물에 작용하는 불변의 이치를 ‘진리’라고 하거나, 인간관계의 마땅한 바를 ‘윤리’로 부르는 식의 쓰임새는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理에 반하는 것을 ‘무리(無理)’라고 한다. 이때의 理는 사리, 도리, 순리 등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무리의 의미가 더 폭넓다. 당위의 영역을 넘어 현실적으로 실현 또는 수용이 어렵거나, 안 되는 것을 억지로 강행(强行)한다는 의미까지도 무리 범주에 포함된다. 한국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무리수를 두다’ 등의 표현에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무리의 의미를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된다. 야당은 당리당략으로 무리한 탄핵을 남발하고,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라는 희대의 무리수로 맞서고, 무리하게 추진한 ‘검수완박’ 와중에 졸속 신설한 공수처가 법적·현실적 논란에도 무리하게 대통령 체포를 강행하는 등 한국은 지금 온갖 무리의 생생 체험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만사 무리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理가 통하지 않는 극심한 혼란과 갈등이 무탈하게 종결되기를 바란다면 무리한 희망일지 걱정이 앞선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