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시작' 심기 일전 필요
차별화 기술 확보 방안 고민해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5 개막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기조연설에서 최신 인공지능(AI) 가속기 블랙웰(Blackwell)을 탑재한 지포스 RTX 50 시리즈 그래픽 카드를 공개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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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일(현지시간) 던진 '폭탄' 발언에 세계 반도체 업계가 흔들렸다. 당사자 삼성전자는 휘청거렸다. 젠슨 황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의 미디어 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8단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HBM3E의 품질 검증 얘기를 하다 저 발언을 했다.
HBM은 D램을 여러 겹 쌓아 데이터 전송 속도(대역폭)를 획기적으로 높인 메모리 반도체로 대규모 데이터 학습 등에 쓰이는 인공지능(AI) 칩에 안성맞춤이고 첨단 제품이라 부가가치가 높다.
그런 HBM이 삼성전자에는 아킬레스건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하반기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품질 검증을 진행한 뒤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올 때마다 펄쩍 뛰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희망 노래도 여러 차례 불렀다. 그런데 젠슨 황의 한마디로 상황은 정리됐다. 당장 납품은 어렵다는 것.
세계 AI 칩 1등 회사 엔비디아를 이끄는 수장의 평가라는 점에서 삼성전자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AI가 대세인 지금 엔비디아는 반도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바탕으로 한 AI 가속기에 꼭 들어가는 것이 HBM이다. 때문에 세계 AI 칩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마침 이날 삼성전자가 공개한 2024년 4분기 잠정 실적(매출 75조 원, 영업이익 6조5,000억 원)은 3분기보다 각각 5%, 29% 줄었고, 영업이익은 증권사들이 보름 동안 낸 보고서의 평균 전망치(7조6,000억 원)를 크게 밑돌았다. 특히 반도체(DS)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의 부진이 뼈아팠다. HBM 등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싸늘한 평가까지 받고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스스로에게 냉정한 평가 잣대를 적용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 수장을 바꾸는 등 분위기 쇄신에 나섰으나 여전히 엔비디아로부터 '오케이'를 받지 못했고 실적은 계속 나쁘다. 단기적 충격 요법만으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난해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 종사자에 대해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예외로 하는 내용이 '반도체 특별법'에 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찬성하는 국민의힘과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노동계의 첨예한 대립으로 입법 자체가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정부의 직접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진행됐던 특별법 논의는 뒤늦게 '주 52시간' 이슈가 추가되며 스텝이 꼬인 형국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같은 날 "세상에 없는 기술로 차별화하자"는 이재용 회장의 말을 전하며 올 하반기나 내년쯤 새 제품 출시를 자신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삼성전자는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구현할지, 어떻게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이끌지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삼성이 만든 길이 곧 정답'으로 여겨지던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의 삼성전자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상준 산업부장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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