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거리에서 공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진 | 더스쿠프 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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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는 순간, 서울 종로에선 보신각의 종이 울린다. 일명 '제야의 종'이다. 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 10만여명이 종로 일대에 모여든 적도 있지만, 이젠 과거의 일이 됐다. 사람으로 넘쳤던 종로 거리엔 활력이 빠졌고, 침체란 불청객이 눌러앉았다. 연말연초 특수가 사라진 보신각 일대를 걸어봤다.
지금까지 종로는 상권의 중심지였다. '제야의 종'이 울리는 연말연초 보신각 일대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밤 늦도록 즐기는 이들이 몰라보게 줄었고, 그럴수록 종로도 쇠퇴했다. 12·3 내란 사태가 휘감은 2024년 말과 2025년 연초 보신각 일대는 날씨만큼이나 싸늘했다.
2024년 12월 31일 오후 6시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 앞. 1층에 올리브영이 있는 건물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여기서 200m 떨어진 거리에 올리브영이 하나 더 있었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곳만 남았다.
수제맥주전문점이 있던 2층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 있었다. 유적처럼 남은 수제맥줏집의 외벽 인테리어는 종로의 쓸쓸한 현주소를 상징하는 듯했다. 거기서 동쪽으로 더 걸었다. 1층 상가들엔 '임대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나마 새 주인을 찾은 매장은 대부분 크기가 작은 '저가형 카페'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민들레영토 종로점' 옆에선 업무·상업복합시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완공하면 지하 8층·지상 17층짜리 대형건물이 들어선다. 이는 공공과 민간이 모두 참여하는 서울시의 도시·건축혁신안 1호 사업이었는데, 이런 재개발의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주변 상권의 침체가 깊었다.
이번엔 길을 건너 남쪽으로 갔다. 이곳에도 세입자를 찾는 공실이 숱했다. 보신각과 조금 더 가까워진 이곳은 '젊음의 거리'로 불리던 공간이다. 여기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직원이든 아르바이트든 노동력이 필요한 매장 대신 '손이 덜 가는' 가게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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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비어있던 화장품 로드숍 매장에는 최근 '인형뽑기 게임장'이 들어왔다. 인근에 있던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전문점도 '청소년을 위한 게임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일명 가챠숍이라 불리는 곳이다.
일종의 뽑기인 가챠는 '불황형 오락'의 전형이다. 적은 돈으로 예측불가능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서다. 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종로에 '불황형 오락'이 성행하고 있는 건 '웃픈 역설'이다.[※참고: '가챠'는 젊은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뽑기 기계를 일컫는 말이다. 아쉽게도 일본말이다. 기계에 동전을 넣고 핸들을 돌릴 때 '찰칵찰칵' 소리가 나는데, 찰칵찰칵의 일본어가 '가챠가챠'인 것에서 유래했다.]
젊음의 거리를 지나 다시 종각역 쪽으로 걸었다. 이내 보신각이 눈에 들어왔다. '제야의 종' 행사를 앞두고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때문에 공연 등을 열지 않기로 했지만 서울시는 "10만명쯤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상인들의 기대는 달랐다. "연말이긴 하지만 연장 영업을 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어요. 손님들이 계속 온다면 자정까지도 할 순 있겠지만 확실하진 않아요. 연말이라고 특별히 달라질 일이 없죠(호프집 사장)." "내일이 1월 1일이지만 평일하고 영업시간을 다르게 운영하진 않을 겁니다. 내일이 휴일이어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니까요(횟집 사장)."
저 옆에서 사장들의 이야기를 듣던 행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요새 그냥 술을 잘 안 마시죠. 적당히 마시고 가는 거지 예전처럼 늦게까지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고요. 이제 그게 더 익숙해요."
그렇게 2024년 마지막 날 밤 8시. 상인들의 말대로 거리는 평일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예전 같으면 손님들로 붐볐을 식당에도 빈자리가 적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없었다면 텅 비다시피 한 식당까지 있었다.
실제로 그날 '제야의 종' 행사엔 서울시가 예상했던 10만명을 크게 밑도는 6만여명의 사람들만 찾아왔다. 2023년엔 8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2만여명이나 줄었다. 경기침체, 고물가, 12·3 내란 사태에 무안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친 탓이었다.
2025년 제야의 종 행사 땐 이전보다 적은 인파가 몰렸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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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일주일 후, 2025년 새해 다시 찾은 보신각 일대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연말연초' 특수가 사라진 자리엔 '침체'란 불청객이 눌러앉아 있었다. 문제는 이곳 상인들이 지긋지긋한 침체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댜. 당분간 쉽지 않을 듯하다.
2022년 2분기 종각역 상권의 폐업률은 1.3%였지만, 2024년 2분기엔 2.6%로 2배가 됐다. 돈을 벌기는커녕 '버티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 왔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란 사람은 '초헌법적' 비상계엄을 발령했으니, 상인들로선 하소연할 곳도 많지 않다. 언제쯤 상인들이 다시 웃는 날이 찾아올까. 1년 후 '제야의 종' 행사 땐 이곳엔 활력이 감돌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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