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기획
고교생 부모 절반 사교육에 노후자금 사용
학부모 30%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부업
“좋은 엄마 되려면 사교육은 포기 못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경기 김포에 사는 맞벌이 엄마인 ‘직장맘’ 최모(40)씨가 새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적금 깨기’다. 올해 자녀들 학원비가 줄줄이 오르면서다. 부부 소득 537만원에서 교육비 비중은 지난해 21%(114만원)에서 올해 25%(133만원)가 됐다.
고1이 된 첫째의 영어와 수학 학원을 합쳐 총 19만원이 올랐고, 본격적인 입시 대비를 위해 25만원짜리 국어 학원도 추가했다. 최씨 가족의 지난해 12월 총 지출은 교육비에 대출비, 교통비 등을 합쳐 총 540만원이었다. 소득에 겨우 맞는 수준이다. 그런데 학원비가 오르며 총 지출은 결국 559만원으로 소득을 넘겼다. 지난해 피아노와 과학 학원을 그만 뒀는데도 이만큼이다.
결국 최씨 부부는 매월 50만원씩 넣어왔던 노후 적금을 깼다. 학원을 줄일 순 없었다. 최씨는 “괜히 돈을 아껴서 자식 미래를 망치는 부모가 될까봐 두렵다”며 “주변에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라도 학원은 보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노후 준비를 못 한다는 사실이 비참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당초 최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퇴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교육비가 계속 불어나며 일찌감치 포기했다. 최씨는 “셋째도 생각했는데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차라리 아이가 없었더라면 삶이 조금 더 윤택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사교육 부담에 고교생 학부모 절반 ‘노후’ 포기=학부모들이 사교육 부담에 짓눌리고 있다. 맞벌이로도 모자란 교육비에 이들은 노후 대비를 포기하고 부업은 물론 대출까지 동원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을 줄인다’는 선택지는 없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곧바로 또래에서 자녀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공통된 불안이다.
8일 헤럴드경제가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과 함께 전국 학부모 8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고교생 학부모 46.8%는 자녀 사교육에 노후 대비 자금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자녀 연령이 높아질수록 노후를 포기하는 부모도 늘었다. 자녀 연령별로 보면 ▷중학생 41.8% ▷초등학교 4~6학년 30.0% ▷초등학교 1~3학년 29.2% ▷영유아 8.4%였다.
학부모 3명 중 1명은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부업을 하고 있었다. ▷고교생 31.9% ▷중학생 38.3% ▷초등학교 4~6학년 38.9% ▷초등학교 1~3학년 29.8% ▷영유아 37.4%가 사교육비 마련 수단으로 부업을 꼽았다.
신용대출까지 동원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이 역시 자녀 연령이 높을수록 많아 ▷고교생 18.1% ▷중학생 14.5% ▷초등학교 4~6학년 7.8% ▷초등학교 1~3학년 6.2% ▷영유아 4.2%였다.
또 사걱세가 해당 조사 결과를 소득 구간별로 분석한 결과 하위구간(1·2분위) 부모는 상위구간(4·5분위)에 비해 사교육비 마련을 위한 신용 대출 경험이 3배가량 높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백병환 사걱세 책임연구원은 “교육부는 사교육비 증가세가 둔화되었다고 밝혔지만, 이는 정책 효과가 아니라 각 가정의 한계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부모들은 현재 가처분소득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사교육비를 대출이나 노후 자금에서 당겨쓰고 있다”고 말했다.
▶“나쁜 엄마 될까 봐” 학부모 불안 노리는 사교육=“나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 후회하면 안 되는데, 그런 마음이에요.”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이모(41)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그놈의 평균, 남들 하는 만큼은 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했다.
본지와 만난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로 이씨와 같은 ‘불안’을 가장 많이 꼽았다. 교육비 부담이 과도하고 그 효과도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변 학부모들의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마→소마프리미엄→황소’. 초등학생 학부모가 흔히 따르는 수학 사교육 학원의 ‘정석 과정’이다. 암기식 공부가 아닌 해결력을 길러준다는 이른바 ‘사고력 수학’ 학원이다. 각 학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입학 시험인 ‘레벨테스트’가 있다. 이들 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학원도 있다. 이씨는 “황소 안 가면 정말 큰일 나는 건지 나도 알고 싶다”면서도 “아이가 학교에 가서 뒤쳐질 수 있으니 일단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입시뿐 아니라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이 시작돼 사교육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설문조사에서도 사교육비 지출을 늘리는 원인에 대한 답변으로 ‘상대평가 등수 경쟁’이 30.8%(443명)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부족한 학교 교육의 질’ 21.7%(312명), ‘맞벌이 가정 증가에 따른 돌봄 수요 확대’ 18.7%(269명) 등이었다.
백병환 연구원은 “현재의 상대평가는 ‘일정 기준의 성취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 정도는 불문하고 ‘옆 친구’ 혹은 ‘자신보다 더 잘할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소근육 발달시켜야” 유치원 다니기 전부터 사교육=영유아 대상 사교육도 오래 전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씨 자녀는 3세 때부터 사교육을 받았다. 창의력과 수리력을 키워준다는 교구 수업 ‘프뢰벨’이 시작이었다. 방문 수업으로 20분에 8만원, 교구 장만에 100만원이 들었다. 수업에 쓰는 교재를 전부 구입하면 400만원이 넘는다. 교구는 소근육 발달, 전집 수업은 언어 발달 명목이다.
이씨는 “요즘 난독증 치료 받는 아이들도 많은데 이 수업을 들으면 모두 해결된다는 이야기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부모가 해주는데 나만 안 하면 ‘나쁜 엄마’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설문에서 교육비 지출 규모는 연령별 차이는 있지만, 영유아라고 해서 결코 적지는 않았다. 영유아 부모들의 평균 사교육비는 71만1000원이었다. 이는 연령과 함께 점점 높아져 ▷초등학교 1~3학년 84만4000원 ▷초등학교 4~6학년 94만6000원 ▷중학생 119만원 ▷고교생 153만7000원이었다.
▶노후·저축·자가…하나씩 포기하는 현실=사교육 열풍 속에서 학부모들은 하나둘씩 포기하는 것이 늘고 있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닌다는 전업 주부 강모(48) 씨는 ‘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 강씨는 “영어 유치원 200만원 등 월급 전부를 다 쓴다”며 “부모님 도움 없이 자가를 마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저축은 꿈조차 꾸기 어렵다. 두 아들 교육비로 총 320만원을 쓰고 있는 한모(47) 씨는 오래 전에 개인 연금 저축 보험을 해지하고 노후 대비는 따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모자라 자신의 직장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식비를 아끼고 있다. 한씨는 “노후 대비를 위해 맞벌이를 선택했는데, 노후는커녕 교육비에 쓰기도 벅차다”고 했다.
사교육을 포기한 학부모를 기다리는 건 죄책감이다. 박모(48) 씨의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태권도 등 예체능 학원만 다니고 있다. 사교육 효과를 믿지 않아서다.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자녀가 영재원 입학을 원해 영재원 대비 학원을 고민했다가 포기한 것이다.
“아이한테 맹목적인 투자는 하지 않아요. 그래도 학원에 보냈더라면 영재원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좋은 기회를 제가 놓치게 한 것 같아요.” 박씨는 한숨을 쉬었다. 박혜원 기자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