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국가 장례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등 전현직 대통령 등이 참석해 있다. UPI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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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나이로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국가 장례식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진행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등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한자리에 모여 “분열된 미국에서 보기 드문 통합의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 클럽·정치적 라이벌 한 자리에…트럼프 푸른 넥타이 눈길
지난달 29일 별세한 카터 전 대통령의 국장은 의사당에 안치돼 있던 관을 예포 21발과 함께 대성당으로 운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장례식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을 비롯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5명의 이른바 ‘대통령 클럽’이 총집결해 화제가 됐다.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에게 패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2021년 당연직 상원의장(부통령)으로 트럼프 당선인이 패배한 대선 결과 인증 절차를 진행해 트럼프 당선인 눈 밖에 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도 함께 모여 카터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AP통신은 “극도로 분열된 미국 정치에서 목격된 이례적인 화합의 모습”이라고 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국가 장례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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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인이 이날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한동안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과거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 음모론’에 불을 지폈으며,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민주주의의 위협이자 적’으로 규정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넥타이 대신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행사에서 푸른 정장에 빨간 넥타이라는 그의 상징적인 유니폼을 포기한 건 사소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뒤 대통령 클럽과 만난 건 이날이 처음이며, 이들은 장례식 전 비공개 만남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숙적에서 친구로…먼저 떠난 포드의 추도사 “재회를 고대했네”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국가장례식을 진행하기 위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관이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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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등이 생중계한 이날 장례식에선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 생전에 미리 써둔 추도사를 그의 아들이 대독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1976년 대선에서 카터 전 대통령과 승부를 겨룬 ‘정치적 숙적’ 관계였지만, 정치 현역에서 은퇴한 뒤엔 두 사람이 당파를 초월한 우정을 보여줬다. 2006년 12월 포드 전 대통령이 타계했을 땐 카터 전 대통령이 추도사를 하기도 했다. 당직이 다른 두 전직 대통령의 끈끈한 우정은 최근 극심하게 분열된 미국 사회에 당파를 넘어서는 관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드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이자 배우인 스티븐 포드는 대독한 추도사에서 “카터와 나는 짧은 기간 라이벌이었지만 오랜 우정으로 이어졌다”며 “재회를 고대하고 있다. 할 얘기가 많네 오랜 친구여” 등을 전했다. “우리는 공유한 가치가 있었기에,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정했음에도 친애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미가 내 신경을 건드린 적 없다고는 말 못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 중 상대의 신경을 안 건드리는 사람이 있던가”라는 대목에선 오바마, 부시,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조문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2021년 세상을 먼저 떠난 카터 행정부의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이 남겨둔 추도사도 그의 아들이 대신 읽었다. 먼데일 전 부통령은 추도사에서 “오늘 우리는 원칙과 품위 있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민권과 인권을 위해 용기 있는 헌신을 한 소중한 친구 카터를 기리는 슬픔에 동참한다”고 했다. 백악관에서 카터 전 대통령의 정책 자문위원을 지낸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는 추도사에서 “카터의 많은 법안은 대부분 양당의 지지를 받아 통과됐는데, 오늘날 극도로 양극화된 정치에선 (이런 것이) 촌스러운 개념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권력 남용에 맞서야”…추도사서 트럼프 겨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립 대성당에서 열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한 후 관을 만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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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전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카터 전 대통령 생전 요청에 따라 추도사를 했다. 그는 자신이 1976년 대선에 출마한 카터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유로 ‘변하지 않는 인격’을 꼽으며 “카터와의 우정을 통해 훌륭한 인격은 직함이나 권력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증오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장 큰 죄악인 권력 남용에 맞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 발언을 하는 순간 장례식을 중계하는 카메라가 자리에 앉아 있는 전직 대통령들을 비췄다고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며 “바이든은 추도사에서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트럼프를 겨냥한 의미가 담긴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관은 국장을 마친 뒤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되는 보잉 747기를 이용해 그의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로 다시 운구됐다. 2023년 11월 타계한 부인 로절린 카터 여사 옆에 안장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한 이날은 연방 정부 기관도 문을 닫았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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