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가장 아름다운(?) 단어 '관세'가 온다-④
한국과 미국 간 관세역사 주요 이슈/그래픽=이지혜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과 조약을 맺는 것은 대세 흐름에 부합한다. 우리(조선)는 스스로 부강해지고 또한 불가피한 외세의 요구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대신들은 성심을 다해 교섭하고 나라의 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종·1882년)
흔히 '슈펠트 조약(Shufeldt Treaty)'이라 불리는 '조미(조선·미국) 수호 통상조약' 관련 조선 국왕 고종(高宗)의 발언이다. 약 140년 전 조약이지만 아직도 평가가 갈린다. 근대 외교의 시작이란 해석과 함께 서구 열강의 경제적 침투를 막지 못해 무역주권이 약화됐단 지적도 있다.
특히 관세는 양국 관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 주제였다. 한국은 미국의 슈퍼 301조,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 통상압력을 견디면서 파트너 관계를 다졌다. 이러한 역사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이어진다.
조미 수호 조약, 서구 무역체계 편입
━
한국과 미국 간 최초의 공식 외교·무역 조약은 1882년 체결된 조미 수호 통상조약이다. 한국이 서구 무역 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계기였다.
조선 입장에선 한계가 분명했다. 외세 압박 속에서 맺어진 통상 조약인 만큼 미국 상인들이 국내에서 관세를 적게 내거나 면제받도록 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조미수호조약은 조선이 근대 국제 사회로 나아가려는 첫걸음이었지만 고종이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등 한계를 보였단 지적이 나온다.
이후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에 양국은 군사동맹을 맺었고 이후 미국 원조와 경제 지원을 기반으로 양국의 무역이 확대됐다. 그러나 한국의 대미 수출은 미미했고 무역수지 흑자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수출 지향책을 펼친 건 박정희 정부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다.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섬유·봉제·신발·전자제품 등을 수입했고 이 시기 관세 정책은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비공식적인 무역장벽과 수입 제한 등이 존재했겠지만 냉전 체제 속에서 동맹국으로서 관세 혜택을 받았단 평가가 짙다.
조미수호조약 장면, 삽화.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1980년대 슈퍼 301조, 21세기의 한미 FTA
━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세진 건 1980년대 들어서다.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철강·가전제품 등 분야에서 압력 수위를 높였다.
미국은 1974년 무역법 301조, 1988년 종합무역법(슈퍼 301조)을 통해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러한 법안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에 적잖은 부담을 안겼다. 가령 미국이 '슈퍼 301조'를 근거로 한국산 섬유·전자·철강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려 하면서 양국 간 분쟁도 생겼다.
2000년대 들어 한국과 미국은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진행, 2007년 최초 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은 의회 승인 절차를 거쳐 2021년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이 발효됐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자동차·전자제품 등에서 대미 수출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거나 인하되는 혜택을 얻었다. 미국 기업들은 농산물·서비스·투자 분야에서 한국 시장 진출을 확대했다.
과정이 수월했던 건 아니다. 자동차와 농축산물 등 품목에선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무역 수지나 일자리 문제 등을 두고 재검토와 재협상 요구도 빈번했다.
미국 우선주의 "FTA는 나쁜 협정"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 이틀째인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3년 연설한 이후 24년 만이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하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에 따른 여파는 강했다.
그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곤 무역적자 해소를 최우선 정책 목표로 겨냥했다.
한국도 그의 과녁에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KORUS FTA가 미국에 '나쁜 협정(bad deal)'이라고 주장하며 개정을 요구했고 철강·알루미늄 등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특히 한국산 철강·세탁기 등에 대한 반덤핑 관세, 세이프가드 조치, Section 232(국가안보) 관세 등을 적용했다. 한국 정부는 면제 혹은 쿼터(수출할당) 협정을 끌어내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결과적으로 2018년 양국은 FTA 개정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전기준 완화와 수출 확대가 허용되고 한국산 철강은 관세 대신 쿼터(수출물량 제한)를 적용받아 25% 고율 관세에서 제외되는 식의 타협안이 도출됐다.
한미 간 관세 역사 속에선 교훈이 있다. 전문가들은 주로 초기 개항기에는 주권 통상권 확보의 중요성, 슈퍼 301조 압박을 겪으면서는 전략적 외교와 협상의 필요성을 배우게 됐다고 평가한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 다양한 지역과의 협정, 기술·공급망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단 분석이 나온다.
세종=유재희 기자 ryuj@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