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제95차 전체위원회에서 박선영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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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에 대해 시민 사회의 거듭된 요구에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45년 전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당시 벌어진 한신대의 신입생 모집중지 조처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가 아니”라며 진실규명(피해 확인) 의결을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진실화해위 관계자들 말을 들어보면, 박선영 위원장은 14일 오후 열린 제95차 전체위원회에서 강성영 한신대 총장 등 4명이 신청한 ‘전두환 신군부의 대학의 자율성 침해사건’(한신대 및 한신대 학생들)을 비공개 심의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이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의결을 반대했다고 한다. 앞서 여당 추천인 김웅기 위원이 “대학의 자율권은 천부인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결을 반대했는데, 박 위원장도 함께 반대한 것이다.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 사건은 이날 박위원장 등의 뜻과 달리 “중대한 인권침해”로 인정되어 통과됐다. 전체위에 참석한 위원장 포함 8명의 위원 중 야당 추천 이상훈·이상희·오동석·허상수 위원에 더해 여당 추천 장영수 위원까지 5명이 진실규명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의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이후 같은 해 10월8일 한신대 학생들이 교내에서 ‘5․18 진상규명 시위’를 벌이자 관련자들을 형사처벌하고, 한신대 신학과 신입생을 2년간 모집중지 조치한 일이다.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시위 다음날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조치 검토’를 작성하고, 전두환이 대통령 취임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신대 시위’를 언급했다. 문교부(현 교육부)는 ‘모집중지’를 개강 허용조건으로 확정했고, 학교 이사회가 이를 따랐다.
진실화해위가 국가기록원에서 찾은 1980년 문교부(현 교육부)의 한국신학대학(한신대) 개강 문제 문서. “신학과 2년간 학생모집을 정지”한다는 조치 내용이 적혀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
이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로 본 장영수 위원은 “대학의 자율성이 학문의 자유와 맞물려 있는데, 피해로 수집된 내용을 보면 대학에서 학문하는 당사자들 입장에서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취지의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천부인권이 아니”라고 한 김웅기 위원의 의견에 대해서는 “천부인권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상황에서 참정권이 천부인권인 것처럼 대학의 자율권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장 위원은 현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선영 위원장과 김웅기 위원에 더해 이옥남 상임위원도 의결을 반대했다. ‘윤석열 변호인단’에 합류한 여당 추천 차기환 위원은 이날 참석하지 않아 표를 던지지 않았다.
심의를 지켜본 진실화해위 한 조사관은 “의결 과정에서 서로 다른 관점과 의견을 갖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은 존중한다. 그런데 박 위원장은 ‘중대한 인권침해가 아니’라고만 할 뿐 그 근거나 이유를 대지 않았다. 위원장이라는 분이 앞으로 이런 태도로 어떻게 심의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상훈 상임위원은 “위헌·불법인 비상계엄에 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과 교수들이 만 2년 동안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를 탐구할 수 없다면 사회 통념상 인권침해가 ‘중대’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상임위원은 덧붙여 “박 위원장은 안락한 자리에 있음에도 현재의 불법 비상계엄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태도를 보면 45년 전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자신에게 닥쳐올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길거리에서 불법 비상계엄에 저항하던 마음을 이해할수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선영 위원장은 15일 진실화해위 누리집에 올린 해당 사건 보도자료 말미에 “한편 이날 위원회 심의에서 일부 위원은 이 사건이 중대한 인권침해로 볼 수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누가, 왜 반대했는지는 역시 밝히지 않았다. 15일 박 위원장은 “한신대 사건을 왜 중대한 인권침해로 보지 않느냐”는 한겨레의 문자메시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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