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이재식씨가 “‘임대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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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잘 챙기소.” 말은 칼이었다. 툭툭 내뱉는 말은 뾰족했고 날이 서 있었다. 어느 순간 범상치 않은 손님들이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산이 끝난 뒤 범상치 않은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건물주의 사람들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이재식(45)씨는 부인과 아이를 인근 도시에 있는 처가로 보냈다. 가뜩이나 외롭던 싸움이 더 외로워졌지만, 아직도 그 끝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때 그 현수막만 안 봤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두고두고 후회스러워요.” 이씨가 본 건 2022년 경남 지역 한 도시의 상가주택에 내걸린 임대 공고 현수막이었다. 도시 변두리인 그 지역은 노선버스도 다니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상가가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게다가 내부에는 탁자, 의자, 식기 등 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화를 넣었다.
“아 그 상가요? 국숫집 하기로 했던 업자가 갑자기 안 한다고 해서 틀어졌어요. 시설비 낼 필요도 없어서 몸만 들어오면 돼요.” 이씨는 고민 끝에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80만원의 조건으로 거길 빌렸고, 그해 가을 개업했다. 반년 동안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역시 위치가 문제였다. 그러다가 지역 라디오 방송에 이어 전국에 방송되는 한 지상파 TV 방송의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매상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씨는 “건물주가 그 뒤부터 압박을 시작했다. 카카오톡으로 ‘이번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가는 거로 알고 있겠다. 나갈 때 원상복구 방안도 강구해 달라’ 등 내용의 내용증명을 거의 매일 보냈다”고 주장했다. 혹시나 해서 계약서를 다시 봤지만, 시설비를 낸다는 얘기는 특약사항에도 한 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는 더 참지 못하고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그다음부터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주차장 사용 등 온갖 사소한 문제에도 부닥쳤고 경찰도 몇 차례 출동했다.
“어느 순간부터 일부 손님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시는 건가’ ‘이 사람 참 비열하고 구린 사람이네’ 등 이상한 말을 툭툭 내뱉고 가요. 그러다가 ‘집에 가족들 잘 챙기소’라는 말을 듣고는 더는 버티지 못했죠.” 엄마와 함께 외갓집에 피신한 아이는 아예 그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씨가 하소연했다.
“우리 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버젓이 있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너무 분해서 피가 마르고 잠도 못 잘 지경입니다.”
◆특별취재팀=박진석·조현숙·하준호·전민구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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