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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이슈 미술의 세계

    이 세계 밖 이세계로 건너가다…실내서 즐기는 미디어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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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겨울 추위가 매섭다. 이럴 땐 실내 여행지가 답이다. 하루쯤 일상을 벗어나 미디어 아트가 만든 환상 세계로 떠나보자. 생동감 있는 명화와 광활한 우주, 동화 속 공간 등 현실을 초월한 이른바 이세계(異世界)가 펼쳐진다. 첨단 기술과 무한한 상상력이 만나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미디어 아트. 전국 곳곳에 다양한 상설 전시관이 들어서 있어 선택의 폭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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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벙커는 세계적인 명화와 화가의 작품을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구현한 전시다. 이왈종 화백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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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기술로 재현한 명화 속 세상

    풀숲처럼 보이는 오래된 비밀 벙커.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과 소리가 차단된 이곳은 과거 국가 기간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이후 쓸모를 다해 버려졌던 공간은 2018년 미디어 아트 전시관이라는 극적인 변화를 꾀하게 된다. 제주 서귀포에 있는 ‘빛의 벙커’ 이야기다.

    ‘빛의 벙커’는 세계적인 명화와 화가들의 작품을 프로젝션 매핑 기술(건물이나 물체 표면에 영상을 투사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로 구현한 파노라마와 같은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다. 벙커 안쪽, 단단한 기둥이 수십개 박혀 있는 전시 공간은 자유자재로 변하는 캔버스나 다름없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가 자라기도 하고, 컴컴한 벽면과 바닥에는 고흐가 그린 별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지금까지 네 번의 전시를 통해 클림트와 고흐, 고갱, 모네, 르누아르, 세잔, 칸딘스키 등 세계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거장들의 작품을 매혹적인 미디어 아트로 펼쳐냈다.

    오는 3월3일까지는 다섯 번째 전시인 ‘샤갈, 파리에서 뉴욕까지’가 이어진다. 수많은 빔 프로젝트를 통해 쏟아지는 빛들이 샤갈의 수많은 작품을 이리저리 조합해가며 관람객들을 몽환적인 시간으로 이끈다.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에 따라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나 경쾌한 재즈 음악이 장단을 맞추며 전시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전시관 한복판에 서 있으면 점점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몰입감이 더욱 높아진다. 회당 관람 시간은 37분 정도. 샤갈 전시가 끝나면 국내 작가 중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이왈종 화백의 미디어 아트가 이어지니 바로 자리를 떠선 안 된다.

    ‘빛의 시어터’도 콘셉트가 같은 미디어 아트 전시관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워커힐 대극장을 재단장해 2022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최고의 쇼를 보여주던 무대에서는 이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델프트 풍경’ 등에 최첨단 기술을 입힌 미디어 아트가 펼쳐진다. 이곳은 층고가 무려 2m에 달한다. 전시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공간에 압도당하게 된다. 기존 구조를 그대로 살려 놓았기 때문에 구석구석 숨은 공간도 많다. 이곳저곳 관람 장소를 옮겨가며 나만의 포인트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는 ‘베르메르부터 반 고흐까지, 네덜란드 거장들’이다. 4월20일까지. 빛의 벙커와 빛의 시어터는 프라이빗 도슨트 프로그램(유료)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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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테마레 ‘타임리스’ 테마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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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왕자가 뛰놀고 자연이 말 건네는 이야기 세계

    남도를 여행한다면 여수 밤바다와 어린왕자를 찾아가보자. 녹테마레는 자연과 어린왕자를 테마로 한 동화 같은 미디어 아트가 깊은 감동을 준다. 싱어송라이터 적재의 감성적인 음악이 더해져 은은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녹테마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는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다. 여우와 나란히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어린왕자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뿔소가 들어 있는 모자를 보면서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이곳엔 어른들을 위한 동화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볼풀장처럼 꾸민 젤리 곰 영상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관람 후 옥외로 이어진 전망 좋은 카페에서 남은 여운을 즐겨도 좋다.

    담양도 들러볼 만하다.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 지역 명소들을 미디어 아트로 표현한 딜라이트 담양이 있기 때문이다. 달빛이 비치는 고요한 대나무 숲과 반짝이는 호숫가를 디지털 기술로 재현해 담양의 매력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에도 언제나 푸릇한 자연에 젖어들 수 있다. 최첨단 기술 속에 천년 역사를 품은 담양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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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종도 인스파이어에서 전시 중인 ‘르 스페이스’는 우주여행 스토리텔링을 미디어 아트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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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아트가 펼치는 우주 세계

    미디어 아트가 보여주는 세상은 인류가 아직 닿지 못한 머나먼 은하에까지 이른다. 우주선을 타지 않고도 우주를 탐험하는 방법, 인천 영종도로 걸음을 옮겨보자.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 위치한 ‘르 스페이스’는 디지털 사이니지와 실감 콘텐츠 기술을 적용한 미디어 아트가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웜홀을 통해 평행 우주로 이동, 새로운 은하를 여행한다는 스토리텔링이 흥미롭다.

    우주여행의 출발지는 육중한 문을 디지털로 재현한 보딩 게이트 앞이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주인이 된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게이트가 열리면 우주정거장을 거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여러 개의 테마 존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마치 영화 <인셉션>을 떠올리게 하는 평행 우주 존에서는 건물이 무너졌다 다시 세워지고 위와 아래가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눈앞에 두고도 믿기 어려운 정교한 영상에 여기저기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모션 인식과 음향 감지 기술을 활용한 뉴 크리처 존은 관람객과 상호 작용하는 인터랙티브 전시다. 관람객 몸짓에 따라 디지털 캐릭터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동작을 크게 하면 더욱 빠르게 반응한다. 격렬한 댄스 동작도 금세 따라 한다. 아마 아이돌 못지않은 화려한 춤 솜씨에 깜짝 놀랄 것이다. 어디 이뿐일까. 실물 같은 휴머노이드 전시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곧 다가올 미래를 본 것 같은 소름 돋는 착각마저 인다. 르 스페이스는 회차별로 입장 인원을 제한한다. 온라인을 통해 티켓을 미리 구매하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전남 나주에도 우주를 테마로 한 체험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이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우주드림’은 설치아트워크와 미디어 아트가 융합된 이색적인 전시가 돋보인다. 중흥골드 스파 & 리조트 안에 자리해 있다. 르 스페이스와 마찬가지로 외계 행성을 오가며 우주를 여행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엘리시온, 크로노테라, 코스모아이같이 행성마다 이름을 붙여 놓아 관람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희뿌연 안개 장막과 푸르스름하게 쏟아져 내리는 빛이 몰입감을 높여주는가 하면,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오는 영상에 피크닉 바구니와 비치 의자들을 배치해 꿈속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게 한다. 심지어 의자에 앉아 쉬어갈 수도 있다. 진짜 우주여행을 떠난 듯 말이다.

    미디어 아트와 설치 미술을 결합한 젤리피쉬 룸과 미니어처로 만든 크로노테라 행성도 색다르기는 마찬가지다. 아쿠아타, 물의 행성에 도착하면 기존과 차별화된 우주드림만의 콘셉트가 확연히 드러난다. 물을 통해 교감하는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설정과 맨발로 물속을 거닐며 미디어 아트를 체험하는 구성이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선사한다. 물속에 투영된 이미지를 통해 해파리와 비단잉어, 거대한 고래와 한 공간에 있는 듯한 신비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우주복을 입고 기념 사진까지 찍고 나면 정말로 우주를 다녀온 기분이다.

    알고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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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왕자를 테마로 한 녹테마레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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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사람이 많아 전시를 제대로 관람하기 어렵다. 가급적 평일 오전 시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관람 시간을 고려해 다음 일정을 짜는 것도 중요하다. 미디어 아트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보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감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인터랙티브 전시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딜라이트 담양은 자신의 사진을 디지털 화면에 전시하는 포토 키오스크 체험도 운영한다. 대부분 미디어 아트 전시는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플래시 사용은 금지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글·사진 정은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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