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미술계 파워 TOP6 이집트 와엘 샤키 개인전
와엘 샤키, 동굴(암스테르담), 2005, 단채널 비디오, 12분 45초.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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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로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와엘 샤키 개인전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에 출품된 ‘동굴(암스테르담)’이다. 세계 각지의 수퍼마켓과 거기 진열된 공산품은 엇비슷해서 따로 설명이 없으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꾸란의 ‘동굴의 장’은 박해를 피해 동굴로 도망친 청년들을 신이 309년 동안 잠들게 했다는 내용. 원테이크로 찍은 이 영상은 2004년 ‘동굴(이스탄불)’부터 2006년 ‘동굴(함부르크)’까지 총 3부작의 일부다.
지난달 27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여러 도시의 레지던시를 전전하는 작가로서의 내 입장을 담은 자화상”이라며 “예술을 포함한 자본주의 세상 속의 나와 종교적인 나 사이의 긴장감을 어디서나 비슷해 보이는 수퍼마켓에서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미국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활동하는 와엘 샤키(54). 카셀 도큐멘타, 뉴욕 MoMA PS1 등에서 전시했다.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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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지만 다른 이들은 그가 뭘 하는지도 몰랐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뉴스 리포터인가 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쳤지만 함부르크의 수퍼마켓에서는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이나 미국의 수퍼마켓에서 같은 장면을 촬영했다면? 샤키는 "미국에서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더 많은 도시로 시리즈를 이어가려던 계획을 멈췄다"고 말했다. 20년 전 작업이지만 낡아 보이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의 편견과 반목이 그대로여서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집트관 전시 장면.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스페어 셈러 갤러리, 리슨갤러리, 갤러리아 리아 루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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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리뷰는 지난해 말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샤르자 미술재단을 설립한 셰이카후르 알 카시미, 타이 출신 작가 리크릿 티라바니자 등에 이어 샤키를 6위에 선정했다.
사막의 전통 흙집에서 베두인족 아이들이 계속해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영상 '텔레마치 쉘터'(2008). 다른 문화와의 충돌을 그렸다.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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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엔지니어인 아버지를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이민을 갔다. 10살도 되기 전 일이다. 원유 산업이 부흥하면서 외국인 전문 인력을 받아들이던 1970년대였다. 베두인족을 비롯한 여러 토착 민족의 전통과 급속한 현대화 물결이 공존하던 곳이었다.
최근 마친 대구미술관의 전시장면. 신작 '러브스토리'는 한국의 구전설화로 작창한 판소리, 폐가전 위에서 벌인 사자춤 공연의 반전 영상이다. 대구=권근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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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곳으로 향하려는 욕망이 모든 문화의 추동력이라고 그는 믿는다. 앞서 암송한 꾸란 ‘동굴의 서’에 나오는 긴 잠 또한 더 나은 곳으로의 이동을 암시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작품을 통해 ‘역사는 반론의 여지 없는 사실인가’ 질문한다. 역사 또한 주관적으로 서술된 기록이기에, 그는 역사와 문학ㆍ우화를 뒤집고 재구성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과거로 눈을 돌리니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더 잘 이해가 됐다.
폼페이에서 아이들의 벌인 가면극 '나는 새로운 신전의 찬가'. 베니스 팔라초 그리마니 미술관과 대구미술관에서 상영됐다.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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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구미술관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금도끼 은도끼’‘토끼의 재판’ 등 한국 구전설화를 새롭게 작창해 안동 하회마을ㆍ병산서원에서 판소리로 부르고 경산의 폐기물 집하장에서 사자춤을 추는 신작 영상 ‘러브스토리’(2024)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형이상학적ㆍ신화적 존재가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와 연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함께 전시된 ‘나는 새로운 신전의 찬가’(2023)는 이탈리아 폼페이 고고학 공원에서 촬영한 가면극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집트 신의 존재를 끄집어냈다.
와엘 샤키, 알 아크사 공원, 스틸 이미지, 2006, 비디오 애니메이션, 10분.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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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의 영상 작품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첫 작품은 애니메이션 ‘알 아크사 공원’(2006). 이슬람교와 유대교ㆍ기독교에서 모두 중시하며 치열한 쟁탈전을 벌여온 예루살렘의 7세기 건축물 ‘바위의 돔’이 계속 미끄러지며 돌아가는 모습을 무한대로 보여준다. 끝없이 이어지는 중동의 분쟁을 닮았다. 샤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아랍권 국가들의 분쟁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무대 위 쇼 같다. 19년 전 작품이지만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4월 27일까지. 무료.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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