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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동의했잖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2차 가해 심각” [N번방 너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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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N번방 사건’부터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목사방 사건’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사건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 5년 사이 국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7배 증가했고 그중 10대 피해자는 무려 20배나 늘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들은 흔히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절망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때 ‘그렇지 않다’고 손을 내밀고 피해자를 위한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N번방 너머의 이야기’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짚어보겠습니다.


“1970~80년대에는 강제추행도 ‘그냥 장난으로 한번 만진 것’ 정도로 여겨지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인식이 많이 사라졌잖아요. 반면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그 시절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느낍니다. ‘사진 한 번쯤 찍을 수도 있지’ ‘어쩌다 한번 볼 수도 있지’라는 식의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어요.”

대구 여성의전화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 루나(활동명) 씨. 그가 만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범죄 피해 자체만으로 고통받는 게 아니었다. 피해자를 탓하고 손가락질하며 때로는 디지털 성범죄 자체를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는 시선 속에서 피해자들의 상처는 반복해 덧나고 있었다.

어두운 밤을 한결같이 비추는 달처럼 언제나 피해자의 곁을 지키고 싶다는 의미에서 활동명을 ‘루나(Luna)’라고 지었다는 그. ‘N번방 너머 이야기’ 2회에서는 그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는 다른 성폭력 피해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의 유형은 매우 다양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불법 촬영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촬영에 동의했거나 촬영물을 찍어서 보낸 뒤에 유포나 협박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특히 후자의 경우에 피해자의 잘못으로 여기는 2차 가해가 심각하게 발생합니다.”
(※촬영 당시 당사자의 동의가 있었더라도 ‘동의 없이’ 이를 유포하는 것은 범죄다. 유포자는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그러게 왜 촬영했느냐(또는 동의했느냐) 질문을 피해자에게 던지는 거군요.
“맞아요. 하지만 촬영에 동의하는 것과 그 촬영물이 동의 없이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온라인에 유포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나 사진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발견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어요.

게다가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 상황 자체가 온라인에서 발생하다 보니 다른 성범죄와 달리 피해 사실 자체를 숨기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피해자의 ‘자발성’만을 문제 삼으면서 책임을 돌리는 건 또 다른 폭력이에요.”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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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는 피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피해자는 당장 가해자를 처벌할 수도, 공격할 수도 없기에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곤 합니다. 그런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저와 상담할 때조차 ‘내 잘못이다. 내 실수다’라고 자책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선생님, 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어떡하죠?’ ‘선생님 제가 이번에 공무원이 되는데 혹시 문제가 될까요?’ 하지만 범죄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앞으로 살면서 자신이 내릴 선택에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방해가 된다면 그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사회의 문제에요. 그럼에도 피해자를 향한 손가락질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계속 위축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변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피해자가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무시당해도, 주변 사람들 중 단 한명이라도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고 말해준다면 힘을 얻습니다. 많은 피해자가 현실에서 말할 곳이 없어 온라인에서 기사나 칼럼, 심지어 네이버 지식in까지 뒤지면서 위로의 언어를 찾곤 해요. 그러니 주변에 피해자가 있다면 피해자가 사진을 찍혔든, 직접 찍었든, 유포를 당했든, 합성을 당했든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죄를 묻는 태도를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100명에게 ‘가장 힘이 된 말’이 무엇인지 묻고 대답을 텍스트 분석 도구로 분석한 결과. ‘잘못이 아니야’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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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진정한 회복’이란 무엇일까요.
“범죄 피해를 입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회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앞으로 성폭력 피해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고요. 저는 피해자가 이 사건에서 어떤 마음으로 저항하고 극복했는지를 기억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되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이 기사를 보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꼭 강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나 한없이 약해질 수도 있어요.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도 되고 외면하고 싶다면 외면해도 괜찮아요. 다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여전히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은 꼭 기억해 주세요.”

―앞으로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나요.
“활동가라는 직업은 수명이 짧아요. 처우도 좋지 않고 수많은 범죄 사건을 마주하며 지쳐 떠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2022년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함께했던 활동가들이 정말 많이 떠났어요. 하지만 피해자들 입장에서 보면 나의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자꾸 바뀌는 것조차 공포가 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피해자들 곁을 꾸준히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밤이 되면 항상 어둠을 비추는 달처럼,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피해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회복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은 ksy@donga.com으로 연락주세요. 회복의 경험을 나누고 싶은 피해자,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 종사자 또는 수사당국 관계자, 전문가 등 어떤 분이어도 좋습니다. 피해자는 신원 보호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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