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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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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김환기·이응노…K미술 꽃피운 65년 상파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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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김병기 3주기 기념전: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 전시 전경. 김창열(왼쪽 벽면 세 점), 박서보(오른쪽 벽면 두 점)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그림과 동시대 작품들을 모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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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상파울루에서 오다. 코리아에 또 ‘명예상’이 이응노 씨 작품에.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국제심사원에 끼다(김병기). 환기 작품이 상파울루 비엔날레 미술관에 수장되다.” (1965년 9월 10일 김향안의 일기)

    담담하게 적은 넉 줄에 감격이 묻어난다.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이 60년 전 뉴욕에서 남긴 일기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비엔날레는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무대에 본격 진출하는 전환점이다. 한국은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첫 참가, 김환기가 명예상을 받았다. 한국 미술가의 첫 국제전 수상이다. 이어 1965년 김병기(1916~2022)가 한국전 커미셔너로 이응노·김종영·이세득·권옥연·정창섭·김창열·박서보 등 30대~50대 미술가 7명을 선정했다. 7회 때 명예상을 받은 김환기의 특별전도 성사시켰다. 김병기는 당시 한국전 도록을 이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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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살 현역 화가’로 불렸던 김병기의 생전 모습. 그는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이자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사진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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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상파울루는 아직도 멀다. 우리는 많은 고충을 무릅쓰고 두 번째로 일곱 작가의 작품 21점을 보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침묵의 소리는 두 지역 사이의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또한 서로의 전통과 풍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이 당면하고 있는 인간 감정의 ‘악추얼(actual)’한 호소라는 의미에서 능히 어떤 공감을 자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관 브로슈어)

    김병기는 현지에서 심사위원으로 뽑혔다. 국제전 최초의 한국인 심사위원이다. 이 전시에서 이응노가 명예상을 받았다. 1963년 김환기에 이은 경사다. 서울 평창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김병기의 3주기를 맞아 그가 커미셔너를 맡았던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재현하는 전시다.

    당시 도록과 브로슈어에 흑백 인쇄된 일부 작품 이미지, 제목과 크기를 토대로 출품작을 수소문해 김환기·김창열·이응노의 전시작 5점을 찾아냈다. 이외에 참여 작가들의 1960년대 초·중반 작업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 등 총 45점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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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김환기의 ‘에코-9’, ‘에코-3’, ‘에코-1’(왼쪽부터). 전면점화로 가기 전 작풍을 보여준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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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점을 출품한 김환기는 특별전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작품을 인수하지 못한다. 생활고로 운송비를 내지 못해 그대로 경매에 부쳐지는 수모를 겪었다. 후에 미국의 지인이 한꺼번에 매입해 수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에는 이때의 14점 중 ‘에코(Echo)’ 시리즈 3점이 나왔다. 이 중 ‘에코-1’ 뒷면에는 비엔날레에 출품했음을 알려주는 원본 태그가 남아 있다. 청회색 바탕에 점과 선, 때로는 십자구도를 실험한 ‘에코’ 시리즈는 전면점화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김창열이 내놓은 ‘제사’ 연작 3점 중 ‘제사 Y-9’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훗날 김창열의 대표작이 된 ‘물방울’ 시리즈가 나오기 전 단계 화풍을 볼 수 있다. 깎은 듯 깎지 않은 ‘불각(不刻)’을 지향하는 조각가 김종영의 추상 목조 ‘작품 65-1’은 비엔날레 전시 후 리움미술관에 소장됐다. 가나아트 전시에는 같은 시리즈로 추정되는 ‘작품 65-2’가 나왔다.

    비엔날레 한국관 브로슈어에 소개된 이응노의 1960년작 ‘구성(Compositon)’도 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어수선한 시대였다. 국산품 애용을 선양하며 외국 미술재료 수입을 금지했지만 국내 회사가 양질의 물감을 만들지 못하던 때였다. 1960년대 유화는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며 전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병기는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 유화 1세대 김찬영. 김병기는 이중섭과 평양초등학교 동기였고 함께 도쿄문화학원에서 미술을 배웠다. 해방 후 예술 행정가로 한국 미술의 기틀을 세운 김병기는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미국에 눌러앉는다. 한국 화단에서는 잊힐 무렵인 1986년 귀국전을 열었고, ‘100살의 현역 화가’로 2017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103세 되던 2019년까지 개인전을 열고 106세 되던 2022년, 잠자던 중 영면에 들었다. 생전에 그가 돌아본 자신의 화단 인생은 이랬다.

    “나는 추상을 통과하고, 오브제를 통과하고, 다시 수공업적이고 원초적인 선(線)으로 돌아왔다. 다 통과한 뒤의 종합적인 단계가 지금의 내 세계다. 예술에 있어 ‘1+1’의 답은 2가 아니다. 3도 되고 5도 되는, 모든 게 다 되는 세계다.” 전시는 4월 20일까지, 성인 3000원.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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