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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4 (금)

"관행 아닌 범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14만 곳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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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기법 회피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토론회
사업장 쪼개고, 프리랜서 써 '가짜 5인 미만'
수당 안 줘도 되고 부당해고 가능 무법지대
"전체 사업장에 근기법 확대가 근본적 해법"

민주노총 5인 미만 차별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 2022년 2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모두의 안전, 모두의 빨간날, 모두의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대선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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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고용이 방송업계 '관행'이라지만,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고용해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것은 관행이 아닌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행 때문에 피해를 보는 노동자들은 원래 받아야 할 권리와 복지를 못 받고, 저처럼 하루아침에 잘리게 되고요."
방송 외주제작사에서 프리랜서 계약을 했던 김서윤(가명)씨

휴일수당 지급, 부당해고 금지 등 노동자로서 최소한 보장돼야 할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5인 미만'으로 위장한 게 의심되는 사업체가 14만여 곳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업장 쪼개기, 근로자 대신 프리랜서로 고용하기 등 방법도 다양하다. 정부도 근기법의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확대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국회에서 조속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짜 5인 미만' 의심 사업장, 10년 새 4배↑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방지 및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를 위한 국정감사 후속 토론회'에서 김태선(뒷줄 맨 왼쪽), 이용우(맨 오른쪽 두 번째), 박홍배(맨 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토론회 주최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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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방지 및 근기법 적용 확대를 위한 국정감사 후속 토론회'를 개최했다. 근기법은 노동의 최저선을 정한 법이지만,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연차유급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부당해고 금지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 등 주요 항목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어떤 사업체들은 실질적으로 5인 이상인 사업장을 가족 명의를 동원해 여러 개로 쪼개거나, 일부 직원만 '근로자'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다른 인력은 '프리랜서' 고용을 하는 방식으로 '위장 5인 미만 사업체'를 만들고 있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은성 노노모 입법연구분과장은 "국세청 통계를 분석해보면 직원 중에 4명 이하만 고용보험에 가입(근로자)돼 있지만, 사업소득자(프리랜서)로 등록된 다른 직원들까지 다 합치면 5인이 넘는 경우가 2024년 14만4,561곳에 달한다"며 이 중 상당수가 '위장 5인 미만 사업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런 사업체가 2015년에는 3만7,994곳이었는데, 10년 새 4배가량 증가했다는 지적이다. '사업체 쪼개기' 방식 위장 사업체는 대략적인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직원 20명 넘는데, 3곳 쪼개 위장 5인 미만"

지난 2021년 9월 1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5인 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 없이 근로기준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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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체들이 '5인 미만 위장'을 벌이는 이유는 마땅히 지급해야 할 각종 수당 등 인건비를 아낄 수 있고, 주 52시간 기준을 넘는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24시간 카페 3개 지점을 운영해 온 P카페는 직원이 20여 명이지만, 점포마다 사업장 등록증을 내고 별개 카페인 것처럼 일부를 '5인 미만'으로 위장했다. 이곳에서 일한 김소희씨는 "교육비, 초과근로 수당, 주휴수당, 야간수당 미지급 등 겪은 문제가 셀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주 5일 혹은 그 이상을 일했다. 통상 시급의 1.5배를 줘야 하는 야간수당 등도 주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인 '시급 1만 원'을 지급했다.

이 같은 편법적 운영을 막기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기법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박은정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근로자 수 기준으로 근기법을 적용하도록 한 기준을 폐기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사업장 쪼개기를 통한 법 회피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5인 미만 사업장에 근기법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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