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대기자 |
곧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선고다. 인용(파면)이든 기각·각하(직무복귀)든 후유증의 위기를 피해가긴 힘들 형국이다. ‘위기’를 가장 와 닿게 정의해 준 말은 “옛것은 죽어가고, 새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황”(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인 듯싶다. 혁명이든 탄핵이든, 선거나 개혁이든 이전의 부조리나 모순, 폐단을 없애는 것 자체야 바람직한 진화다. 하지만 그 ‘적폐’란 걸 없앤 빈터에 새로운 제도나 문화를 심어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이전의 문제들은 머잖아 좀비처럼 되살아나고 만다. 미래에의 희망 없이 과거의 악순환이 뻔히 예견되는 상황, 그게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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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어떤 선택이든 위기 불가피
8년 전 ‘적폐청산’ 후유증 반추를
악순환 끊을 정치 본령 회복하길
그가 파면돼 5월께 대선이 치러진들 이 위기가 저절로 해소될 리는 없다. 과거와 달라질 ‘새것’이 없는 한 말이다. 우리의 앞날이 8년 전 박근혜 탄핵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정치와 도대체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그러니 위기 극복의 으뜸은 4년 중임제든 국회의 책임총리 추천제 등 제왕적 대통령제를 철폐하고, 권력을 분산시킬 ‘견제적 협치 민주주의’로의 개헌이다. 가장 유력하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란 자리보다 이 시대의 역사적 책무를 공유하는 게 가장 명예로운 정치적 업적일 터다. 새것은 없이 옛것만 누리려면 대한민국의 위기란 더욱 커져 갈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11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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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반드시 없애야 할 옛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정치 보복의 악순환이다. 『킬 빌』 『아저씨』 등 악인 응징 영화의 영웅들(우마 서먼, 원빈)에게 우린 박수를 보낸다. 마음속으론 더 통쾌한 보복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인간 본성의 원초적 충동인 복수와 응징은 정서적 유전자로 이어져 왔다”는 심리학의 분석도 있다. 갑의 횡포 등 어느 정도 사회적 부정을 노출, 억제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법이나 도의에 의해 전혀 통제되지 않는, 마구잡이 보복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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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하기만 한 직권남용으로 고소·고발된 공직자는 2018년에만 7879명. 10년 전보다 3배 이상이었다. 2020년 ‘적폐청산’ 95건의 1심 무죄율은 15.8%로 형사 사건 평균 무죄율(3.1%)의 5배를 넘어섰다. 법의 경계선을 넘나든 초법적, 아니 정치적 보복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때 세상에 뛰쳐나온 이 ‘정치 보복’이란 괴물 악마가 호리병 속에 되들어갈 기미는 여전히 없다.
모든 문제의 답은 그 원인에서부터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탄핵”의 촛불 든 국민 80%를 ‘자기 이념·진영에의 지지’로 착각했다. 역사적 오류다. 그 80%는 합리적 중도, 보수와의 ‘탄핵 대연합’이었다. 그러나 정권과 개혁을 동일시하고, 선과 악을 이분했다. 이 기회에 보수 정파를 타격하자는 운동권 권력 엘리트들에, 출세 지향의 정치 검사들이 가세한 난(亂)이었다. 모든 보복이란 대화가 사라진 뒤부터다. 정치가 대화·타협의 본령을 잃자 자신들이 관련된 모든 문제를 사법으로 몰고 갔다. 남는 건 그 법원·검찰에 압박을 가할 장외투쟁, 탄핵·소송과 처벌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사안의 재판관이 되는 걸 허용 않는 게 민주주의 가장 중요한 요건”(제임스 해밀턴)이란 미국 민주주의 국부들의 선언과도 거꾸로였다.
최훈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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