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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월)

尹 비상계엄 이후 가장 대통령다운 모습 보여야[이승환의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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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

[편집자주] 영문자 로키(low key)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솔직하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을 때' 쓰인다고 합니다. 솔직하되 절제된 글을 쓰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11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2.25/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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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지난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탄핵 주요 사유는 대통령이 선거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 등 노 대통령의 발언을 야당은 문제 삼았다.

최종 변론 이후 14일 뒤인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돼 노 대통령은 복귀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재판관 9명 가운데 3명 인용, 5명 기각, 1명 각하였다.

당시 TV로 노 대통령의 탄핵 기각 과정을 지켜봤다. 20대 초반이었던 필자는 법 전공자가 아닌 데다 현직 대통령 최초의 탄핵 심판이라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그러나 자주색 법복을 입은 윤영철 헌재소장이 차분한 어조로 읽던 '결정문' 가운데 다음 대목은 귓가에 울렸다.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확고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 순간 헌법의 의미와 무게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했다. '아, 법률 위에 헌법이 있구나. 헌법에 위반되면 대통령이 파면될 수 있구나.'

그로부터 12년 10개월 뒤인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재판관 8명은 박 대통령과 관련된 '국정 농단' 사태가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전원일치로 판단했다.

당시 사회부 사건팀 기자였던 필자는 헌재를 에워싼 박 대통령 지지자들을 취재했다. '충돌 중심으로 즉각 보고하라'는 선배의 지시를 휴대전화로 확인한 순간, 어디서 '쿵' 소리가 들렸다. 70대 남성 김 모 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김 씨의 얼굴색은 퍼렇게 변해갔다. 그때, '이 사람은 곧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병원으로 이송된 김 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김 씨는 60대 A 씨가 탈취해 차 벽을 들이박으려고 질주했던 경찰 버스와 충돌한 소음 관리 차량에서 떨어진 철제 스피커를 맞아 사망했다. A 씨는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였다. 이날 김 씨를 포함한 4명이 숨졌다. 대낮 헌재 앞 시위대에게 경찰관들이 맞았고 기자들이 맞았고 경찰관과 기자로 오해받은 시민들도 맞았다.

악몽 같던 현장에서 벗어난 후에도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뜬눈으로 밤새고 나면 '법률 위 헌법을 위반해 대통령이 파면됐는데 왜 일부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할까'하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헌재와 헌법의 권위를 흔들어 그 결정을 의심케 했던 탄핵 반대 주최 측이야말로 끔찍한 폭력 사태의 주범이었다.

8년이 지난 2025년 3월,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다. 수만 명이 자리 잡은 집회에선 헌법재판관들에 대한 욕설과 야유가 난무한다. 악몽 같은 아비규환이 재현되는 걸까. 이르면 이번 주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선고를 한다. 헌재에는 민원과 전화가 폭주해 일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한다.

헌재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따른 헌법 개정의 산물이다. 1988년 9월 1일 개소 후 36년 6개월 동안 위헌법률심판 등 5만 1497건을 처리했다. 특히 사회보호법에 따른 무조건 감호(1989년 7월)와 신행정수도법(2004년 10월), 간통죄(2015년 2월)는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에는 해산을 명했다.

헌재의 선고는 시대를 앞서나가 우리 사회의 가야 할 길을 제시하기도,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우리 사회를 주저앉히기도 했다. 다만 어느 쪽의 결정이든 시대의 나침반 역할을 했으므로 부정할 수 없었다. 윤 대통령 측은 앞서 탄핵 선고와 관련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지난 2월 19일, 기자간담회)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 윤 대통령이 본인의 입으로 '승복'을 언급한 적이 없다. 이참에 윤 대통령이 직접 헌재 결정 승복 메시지를 내는 건 어떨까. 그것은 비상계엄 사태 후 가장 대통령다운 모습이 될 것이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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