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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화)

K수출 기업들, ‘관세 우산’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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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세계 상대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매경이코노미

일러스트 : 정윤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1일(현지 시간)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수입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올리겠다고 밝혔다가 6시간 만에 철회했다. ‘자고 나면 말이 바뀐다’는 악평이 나올 만큼 ‘변덕’이 심하다. 이 때문에 재계는 물론 자본 시장도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캐나다에 대한 ‘두 배 관세’ 위협은 취소됐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는 3월 12일 예정대로 발효됐다. 이번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미국 정부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국의 모든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첫 사례다.

집권 1기 때 철강 제품에 25%, 알루미늄 제품에 10% 관세를 각각 부과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는 알루미늄 관세율을 25%로 올렸다. 적용 대상은 두 자재를 활용한 창틀, 음료 캔 등 253개 파생제품으로 확대했다. 앞서 한국은 2018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연간 263만t 철강에 대해 면세 쿼터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모든 관세 예외 및 면제를 전부 없앴다.

다만 볼트, 너트, 스프링 등 166개 파생상품은 12일부터 곧바로 관세가 적용되고 범퍼, 차체, 서스펜션 등 자동차 부품과 가전 부품, 항공기 부품 등 87개 파생상품은 미국 상무부 추가 공고가 있을 때까지 적용이 유예된다. 이에 따라 한국이 2018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철강에 적용받던 기존 면세 쿼터(연간 263만t)는 12일 0시 1분 폐기됐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1기에 이어 2기에도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에 집중하는 것은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 허브로 부상하며 미국 철강·알루미늄 산업이 쇠퇴하고 미국 내 관련 일자리가 줄었다고 판단해서다.

다만 트럼프 1기 행정부가 2017년 25%의 철강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지난해 미국 철강 생산량은 2017년보다 오히려 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알루미늄 생산량 역시 10% 줄었다.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는 ‘예외 없는 전 세계 공통’을 표방한다. 이 때문에 별다른 성과 없이 오히려 각국의 통상 반발만 거세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은 260억유로(약 41조원)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선언하며 미국과의 통상 전쟁에 맞불을 놨다. EU가 미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은 물론 섬유, 농산물, 가전제품 등에도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망했다. EU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당시 미국의 철강 관세에 반발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리바이스 청바지 등 미국을 대표하는 상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25% 관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이 주요 수출 경쟁국과의 경쟁에서 더 불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업계에선 “미국 철강 업체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국내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와 함께 “25% 관세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고, 쿼터 제한도 사라지는 만큼 한국 업체들이 미국에 더 적극적으로 진출해 매출을 늘릴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현재로선 낙관보다 비관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관세 장벽으로 US스틸 등 미국 업체 제품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며 기존 한국산 제품 수요를 미국 제품이 일정 부분 흡수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한 미국에 접근하지 못하는 중국 저가 철강 제품이 쏟아질 수 있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철강 주요 수출국은 캐나다(71억4000만달러·23%), 멕시코(35억달러·11%), 브라질(29억9000만달러·9%), 한국(29억달러·9%), 독일(19억달러·6%), 일본(17억4000만달러·5%) 등의 순이었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철강 수출액에서 미국 비중은 13% 수준으로 가장 높다.

실적 떨어진 韓 철강사 긴장 모드

美 시장 못 뚫은 中 저가 제품 쏟아지나

무엇보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꽤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4730억원으로 전년 대비 29% 감소했다. 현대제철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이 3144억원에 그쳐 1년 새 60% 줄었다.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중국이 과잉 생산된 철강을 수출로 해소하면서 이들 업체의 이익이 급락했는데, 관세 폭탄으로 당분간 실적 반등이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최대 시장인 미국은 한국보다 철강 제품 가격이 20%가량 높아 수익성 좋은 시장인데 접근성이 아무래도 떨어질 수 있다”며 “미국을 뚫지 못하는 중국의 저가 철강 제품이 유럽, 동남아 등 세계 각지로 쏟아져나올 경우 한국산 철강 제품 가격 경쟁력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뿐 아니라 알루미늄에도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 파장이 만만치 않다. 국내 기업들은 알루미늄 가공의 기본 원료 격인 잉곳을 수입한 뒤 중간 원재료인 알루미늄판이나 완제품인 음료 캔, 전기차 배터리 케이스 등으로 가공해 수출한다. 동원시스템즈 같은 알루미늄을 가공, 수출하는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철강, 알루미늄 25% 관세 부과로 수출을 통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1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0.11~0.22%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연간 GDP가 최대 0.2%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자동차 부품 산업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자동차 부품이 철 또는 알루미늄으로 분류돼 수출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산 자동차 부품의 미국 수출액은 총 82억2000만달러(약 11조8836억원)로 이 중 철, 알루미늄으로 분류되는 제품은 20~30%에 달한다.

철강 관세 폭탄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국내 철강 업체들은 저마다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다. 당장 한국산 철강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악화돼 수익성이 떨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장재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철강 관세 부과로 국내 철강사마다 수출 단가 상승, 가격 경쟁력 약화, 수출 물량 감소의 악순환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철강 업체들이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사진은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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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없이 부과하는 ‘제로섬’

쿼터제 사라지며 기회 될 수도

한편에서는 이번 철강 관세가 예외 품목, 예외 국가 없이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일종의 ‘제로섬’ 상황이라 오히려 한국에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레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집권 1기 때도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철강 관세 카드를 꺼낸 바 있다. 한국은 당시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수출 물량을 2015~2017년 연평균 수출량(약 383만t)의 70%인 263만t으로 제한하는 쿼터제를 받아들였다. 한국에 부과된 연 263만t의 철강 쿼터제는 세부 품목별로 수출량이 정해진다. 미국 내 수요가 커서 더 많은 수출이 가능했던 품목이 있었더라도, 품목별 할당량을 넘겨 수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엔 25% 관세가 부과되는 동시에 쿼터제가 사라지는 만큼 다양한 철강 제품 수출이 가능해졌다. 한국 철강사 입장에서는 미국이 생산하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을 중심으로 대미 수출 문턱을 넘어볼 만하다.

일례로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 외판은 주로 멕시코, 캐나다산 제품이었는데 국내 철강사들이 이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알래스카 천연가스 프로젝트’가 현실화된다면 한국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쓰일 강관이나 플랜트 제작에 필요한 후판, 형강 수출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물론 경쟁이 워낙 치열해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는 만큼 철강사들은 중장기적으로 대미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고심하는 모습이다. 현대제철은 10조원가량을 투자해 미국 현지 제철소 건립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 기아 완성차 공장 인근에 위치한 텍사스, 루이지애나, 조지아주 등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현지 주정부와 제철소 건설에 따른 인센티브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코는 미국 현지 철강 기업에 지분을 투자해 조인트벤처(JV)를 구성하거나 현지 제철소를 짓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철강 업계에서는 현금흐름이 위축된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미국 제철소를 짓는 것은 자칫 재무 구조 악화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매경이코노미

자동차·반도체도 살얼음판

미국 투자로 대응할까 고심 중

아직 관세가 부과되진 않았지만 자동차 업계 역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수출액은 707억8900만달러로, 이 중 대미 수출액은 347억4400만달러다. 미국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49% 수준이다. 자동차는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액 중 27%를 차지한 ‘효자 품목’이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은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승용차에 대해선 2016년부터 무관세를 적용해왔다. 만약 자동차 관세가 부활하면 원가 상승으로 한국 완성차 업체 영업이익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미국 정부가 관세 20%를 부과하면 현대차·기아 영업이익이 최대 19%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KB증권은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10% 관세를, 멕시코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매기면 현대차와 기아의 영업이익이 각각 1조9000억원, 2조4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반도체 업계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미국이 반도체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다면 1997년 미국 주도로 발효된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반도체 등 IT 기기에 대한 관세를 매기지 않은 이후 28년 만이다. 한국은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 이후, 중국보다 미국 수출 의존도가 커져 관세 인상이 현실화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수입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에 메모리 공장을 둔 마이크론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한국 반도체 업계에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기업 대응책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미국 내 투자다. 현대차, 기아 등 완성차 업체도 대대적인 현지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3월 말로 예정된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생산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조지아주 기아 공장과 HMGMA 공장 건립에만 300억달러에 육박하는 투자를 단행했다.

트럼프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정책에도 맞대응할 태세다. 현대차그룹은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2개 이상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혼류생산’ 체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익률이 서로 다른 여러 차종을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제조할 수 있어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를 통해 관세를 회피하면서 전기차 보조금 축소에 따른 실적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속내다.

반도체 업계는 관세뿐 아니라 반도체법 폐기 리스크까지 휘말렸다는 점이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는 대만이 거의 독점적으로 만들고 한국도 조금 있다. 우리는 반도체 산업을 보호할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반도체법에 대해서는 “엄청난 돈 낭비”라며 폐지를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한국을 겨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제정된 반도체법은 미국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5년간 총 527억달러(약 76조4000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위한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370억달러 이상을 들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하고 47억4500만달러(약 6조8800억원) 지원을 약속받았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에 인공지능(AI) 메모리반도체용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4억5800만달러(약 6640억원)의 보조금과 5억달러 대출을 확정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법을 아예 폐기하진 않더라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주기로 한 보조금을 대거 삭감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보조금이 깎이지 않으려면 당초 계획보다 투자 금액을 늘려야 할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향후 미국 시장에서 대규모 반도체 공장 설비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뚜렷한 해법 못 내놓는 정부

덤핑 공세 대응하고 중소기업 지원

트럼프 대통령 관세 조치가 한국 주력 산업인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을 겨냥하면서 기업들이 벼랑 끝 위기에 처했지만 정부는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단 불공정 무역 행위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무역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조사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무역위원회 사무기구인 무역조사실에 ‘덤핑조사지원과’와 ‘판정지원과’를 신설하고, 조사 전문인력 등을 증원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과 중국의 전방위 덤핑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다.

또한 관세 대응 역량이 취약한 중소기업 지원에 나선다. 대한상공회의소 등과 협조해 미국에 수출한 이력이 있는 중소기업 대상으로 컨설팅을 지원하고 필요시 통관 서류 작성도 대행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국 주요 기업의 대미 투자가 미국 경제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 입장에서 시급한 조선업 협력,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 참여 등의 카드로 맞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목소리다. 한국이 트럼프 정부의 최우선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파트너라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기업의 구체적인 미국 투자 계획을 모아 일원화 창구를 통해 트럼프 정부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1호 (2025.03.19~2025.03.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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