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성은 원래 노래보다는 춤에 더 소질이 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자신의 진정한 꿈이 가수에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를 미치게 했던 흑인 가수들의 음색과 기교를 연마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감행한다. 한국인의 목소리나 발음은 흑인들의 전유물로 느껴졌던 R&B나 솔 음악에는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에 한국에 흑인음악을 소개했던 김조한이나 박정현의 믿을 수 없는 절창은 오로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만이 배울 수 있었던 ‘본토’ 감성이라고 애써 자위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휘성은 그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다. 그가 우상으로 삼았던 시스코나 크레이그 데이비드의 노래를 커버하기 위해 타고난 미성을 버리고 두툼하고 탁한 목소리를 장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있었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국형 R&B 발라드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안되나요’가 담겼던 그의 데뷔 앨범 <Like A Movie>를 처음 들었던 날과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호회 시절의 그 휘성이 결국 해냈구나 하는 반가움과 함께 새삼 주목했던 건 그의 목소리였다. 앨범 수록곡들은 당시 가요가 대부분 그러했듯 본토 흑인음악의 장르적 순도를 따라갈 만큼의 작법적인 수준을 획득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노래만은 달랐다. 오로지 한국에서 음악을 귀로 ‘따고’, 수없는 연습과 좌절을 통해 단련된 그의 힘 있고 유려한 음색은 드디어 한국적인 흑인음악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해주었다. 데뷔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휘성의 ‘Incomplete’ 커버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봤다. 당연히 시스코의 원곡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결코 폄하하거나 간과할 수 없는, 새로운 괴물 보컬리스트의 출현 앞에 느꼈던 전율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With Me’는 또 한번의 충격이었다. 아마추어 칼럼니스트 시절을 포함해 내가 음악평론가로서 느꼈던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그 곡. 작곡가 김도훈이 만든 넘실대는 그루브와 세련된 화성은 흑인음악을 댄스뮤직 혹은 발라드 장르로만 알고 있던 가요 팬들에게 그 자체로 혁신이었고, 그 쉽지 않은 노래를 가지고 노는 휘성의 기교와 자유분방한 애드리브는 가창력의 정의에도 새로운 기준이 필요함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가요계에는 그의 톤과 창법에서 영향을 받은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휘성 세대의 출현을 알렸다. 만약에 ‘창법’으로 다시 쓰는 가요사가 가능하다면 휘성은 응당 중요한 한 챕터로 다뤄져야만 할 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
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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