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행세하는 고액 영어학원 단속 의지 있나
놀라운 건 교육부의 대처였다. 교육부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내용을 발표하면서도 영어유치원에 대한 별다른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애초에 유아 사교육비 조사가 급증하는 영어유치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일한 대응이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
영어유치원은 약 1000개가 성업 중이지만, 교육부는 몇 명이 다니는지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 “‘유치원’ 명칭을 쓰는지, 교습비를 초과징수하는지 단속할 것”이라는 ‘도돌이표 대책’은 현장에선 힘이 없다. 실제 영어유치원 중 대놓고 ‘유치원’이라 표시하는 곳은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을 학원으로 여기는 학부모도 없다. 사실상 유치원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은 학부모도, 교육부도 다 안다.
2023년까지만 해도 교육부는 이 문제를 꽤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대책을 내놓으면서 “유아 영어학원이 다른 과목도 가르치며 편법으로 유치원 역할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아교육법에 학원이 유치원처럼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넣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 개정은 2년 가까이 지지부진하고, 그사이 영어유치원은 폭풍 성장 중이다.
영어유치원 존재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개인 선택을 막을 수 없고, 영어 집중 교육이 필요한 이들도 있다. 다만 지금처럼 규제 사각지대에서 학원이 공교육기관의 대체재 역할을 하고, 다수가 불안해하며 그곳으로 ‘몰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입시 준비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으로 가는 이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단속보다 중요한 문제도 있다. 영어유치원은 결국 공교육에 대한 신뢰와 결부돼 있다. 정부 기관에 아이를 맡겨선 뒤처진다는 불안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어린이집·유치원을 한 기관(가칭 영유아학교)으로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추진 중인 이 부총리는 이를 통해 교육·보육 질을 높이고 기관 선택 고민을 덜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교육부는 더 나아가 영어유치원에 대한 고민도 덜어줄 수 있어야 한다. 영어유치원이 아닌 영유아학교를 선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하면 부모들의 불안과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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