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설에 방탄복 착용하고선
崔대행에겐 신변 위협성 발언
이 대표는 이날 서울 광화문 민주당 천막 농성장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 회의에 방탄복을 입고 나왔다. 이 대표에 대한 암살 위협 제보와 관련해 혹시 모를 위해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다. 이 대표는 회의에서 손으로 인근 정부서울청사를 가리키며 “이 앞에서 최 대행이 근무하는 모양이죠?”라고 운을 뗐다. 이어 최 대행의 마 후보자 임명 보류를 언급하며 “지금 이 순간도 직무유기죄 현행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경찰이든 국민이든 누구나 즉시 체포할 수 있다”고 했다. 한준호 최고위원도 회의에서 “물리적으로 최 대행께서 들을 수 있는 거리”라며 “지금 최 대행이 하는 행동은 내란 수괴와 내란 동조 정당에 대해 부역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여권에선 이 대표가 최 대행 집무실이 민주당의 광화문 농성장 인근이란 점을 알려 지지자들에게 체포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최 대행이 언제까지 마 후보자를 임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헌재 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사법부 판단도 없이 직무 유기라고 단정하고 현행범 체포 운운한 것은 지지자들에게 사적(私的) 보복을 부추긴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심야 비상 의원총회를 열어 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를 논의했다.
◇탄핵 선고 늦어지자… “킬링필드” “현행범” 점점 세지는 李의 입
민주당은 최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암살 위협 제보가 들어왔다며 외부 공개 일정을 축소하고 사설 경호 인력도 늘렸다. 그런 이 대표가 19일 방탄복을 입고 광화문 농성장에 나와 최상목 대행을 향해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를 문제 삼으며 “현행범 체포” “몸조심하라”고 공개 언급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정치권에선 헌재 결정 선고 일정이 잡히지 않자 이 대표와 민주당의 초조감이 커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작년 12월 14일 탄핵소추된 후 한동안 대여(對與) 공격보단 경제·민생·안보와 관련한 정책을 내놓는 데 주력해 왔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국민연금 모수 개혁안이나 부부 상속세 폐지를 수용하겠다고 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정치권에선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경우 치러질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안정감 있는 지도자 모습을 부각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이 종결된 후 한 달이 되도록 헌재가 선고 일정을 잡지 않자 이 대표가 직접 압박에 나선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게 거대 야당 대표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발언인지, IS(이슬람국가·극단주의 무장 세력) 같은 테러리스트가 한 말이 아닌지 잠시 착각했다”며 “명백히 자신의 지지자들로 하여금 테러를 저지르라고 부추기는 불법 테러 선동”이라고 했다. 여권 주요 인사들도 이 대표를 향해 “조폭식 협박”(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깡패들이 쓰는 말”(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최 대행에 대한 경호 등급을 올려 경호 수준을 강화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광화문 농성장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데 이어 오후엔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도보 행진도 했다. 그동안 테러 위협 제보가 있다며 외부 일정을 자제해 온 것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었다. 이 대표의 발언 수위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서 육군이 계엄 선포를 앞두고 시신을 임시 보관하는 영현백을 3000여 개 구입했다는 한 언론 보도를 거론하며 “킬링필드 열릴 뻔”이라고 했다. 육군은 “2022년 합참 지침에 따라 계획되어 있었던 (확보) 수량으로 비상계엄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민주당의 이런 움직임은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기일이 늦춰지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헌재가 변론 종결 후 한 달이 되도록 선고 기일을 잡지 않자 민주당 안에서 불안감과 초조함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재의 기각 혹은 각하 결정 가능성에 대비해 민주당이 자기들이 추천한 마 후보자를 임명해 심리에 투입함으로써 탄핵 정족수(재판관 6인 이상 찬성)를 확보하려는 것이란 말도 나온다. 이 대표가 오는 26일 1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를 앞둔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은 이날 밤늦게 비상의원총회를 열고 최 대행 탄핵소추 논의를 이어갔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전날 최 대행에게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19일까지 마 후보자를 임명하라는 최후통첩을 했었다. 그러나 이날 의원총회에선 “최 대행을 탄핵하더라도 실익이 없다” “최 대행이 탄핵된다고 마 후보자가 임명되느냐”는 등 신중론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최 대행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경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0번째 탄핵소추안이 된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줄탄핵’으로 정부 기능이 마비됐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윤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에 이어 최 대행에 대해서도 탄핵소추에 나설 경우 중도층 이탈이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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