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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도착, 차량에서 내려 대기하던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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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대신 궤변만 늘어놓는 몰염치에 숨이 턱 막힐 때마다 여의도에선 한 사람이 회자되곤 했다. "그래도 박근혜가 양반이었다. 고개 숙이기라도 했잖아." 국정농단을 방치한 죄로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썼지만, 그와 비교하면 '상대적 성군'으로 불리는 비극의 아이러니. '대한민국 대통령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나'를 두고 국민들은 '불행 배틀'이라도 붙는 심정이다.
국회에 군홧발이 쳐들어왔던 헌정 유린의 그날 밤이 100일을 넘어가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를 지키겠다며 폭도들은 법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겠다는 여당 의원까지 들썩이는 난리 통에 그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살아 돌아왔음을 알렸고, 탄핵 선고는 기약이 없다. "파면 이후에도 전국 유세를 돌며 어퍼컷을 날리며 선동에 나서면 어쩌나" "여사, 토리와 관저에 틀어박혀 칩거 투쟁하면 끌어내지도 못하고 어쩌나" "'권한대행 세력'이 차기 대선 날짜를 잡지 않고 뭉개면 어쩌나". 아무 말이 난무하지만, 웃어넘길 수 없다.
이쯤 했으면 내려올 만도 하건만, 왜 놓지 못하는가. 대통령 자리가 가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많아서다. 누린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아서 두려운 거다. 비극적 최후가 뻔한데도 ‘절대 반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골룸처럼 권력이 클수록, 탐욕은 강해지고 절제는 약해진다. 단 0.01%만이라도 이기면 모든 힘을 독차지하는 달콤함을 맛봤기에, 죽어라 싸우고 버틴다. 대통령이 된 쪽은 지키려고, 안된 쪽은 뺏어 오려 기를 쓴다. 다음 대통령이라고 다를까. 나라는 이미 두 동강 났고, 어느 쪽이 되든 '대통령으로 인정하니, 안 하니'를 두고 임기 내내 싸우기만 하다 끝날 수 있다.
답은 뻔하다. 대통령의 힘을 쫙 빼버리면 된다.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대통령 권한을 나누기 시작해야 한다. 진 쪽에도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력을 떼어 줘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뒤늦은 후회는 한결같았다. "탄핵연대 세력과 품 넓게 국정운영을 했어야 한다." "협치는 절대 말로는 안된다. 야당이 얻을 게 없는데 왜 도와주겠나." 대통령 혼자 대한민국을 바꿀 수도 없고, 바꿔서도 안 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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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22111390004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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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국회팀장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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