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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어머니 반대에도 수술방 누웠다…문자 한 통에 '제주→서울' 달려온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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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2층 성분채집술·헌혈실에서 만난 이남호씨(30). /사진=민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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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고 헌혈이랑 똑같은 느낌? 수술방에선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이남호씨(30)는 20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2층 성분채집술·헌혈실(헌혈실) 병상에 누워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말초혈조혈모세포 기증자다. 조혈모세포는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어머니 세포로, 골수에서 생산된다. 건강한 혈액세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백혈병 등 혈액암 환자들은 기증자의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씨는 2022년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을 등록했다. 평소 2주에 1번씩, 총 135회에 달하는 헌혈을 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2년 뒤 지난해 10월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으로부터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과 유전 형질이 일치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환자와 기증 희망자 간 유전 형질이 맞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기증을 희망하더라도 평생 연락을 못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상보다 빨리 유전 형질이 맞는 환자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씨는 덜컥 겁이 났다. 그는 "직장에서 문자를 받았는데 막상 보니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면서 "가족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어머니께선 반대했다. 가만히 있으면 죄책감이 생길 것 같았고 다시 어머니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일하는 이씨는 지난 19일 서울로 올라왔다. 장기이식법 시행규칙에 따라 3일간 직장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1일 최대 13만원의 유급휴가 보상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씨는 전날 입원 후 조혈모세포 성장 촉진제 투약 등 과정을 거쳤다.

이씨 옆에 놓인 성분채집기. 원심분리기가 내장돼 있어 혈액에서 조혈모세포와 나머지 성분을 거르는 역할을 한다. /영상=민수정 기자.

중심정맥관을 통해 세포를 채집하게 된 이씨는 이날 오전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최근엔 골수 직접 채취가 아닌 팔과 중심정맥관(목, 쇄골 부위)을 통해 세포를 채집한다.

촉진제를 맞았을 때도, 전날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마취 주사는 아팠고 수술방은 이씨 생각보다 컸다. 다행히 마취 주사를 맞고 목 부위 중심정맥관에 주사기를 삽입하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시 헌혈실로 돌아온 후로는 4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 물은 마실 수 있지만 화장실은 갈 수 없다.

기증자 옆에는 '달달' 거리며 돌아가는 성분 채집기가 놓여있다. 원심분리기가 내장된 기계는 이씨 정맥관에서 나온 혈액에서 조혈모세포와 나머지 성분을 분리한다. 4시간 동안 약 240ml 조혈모세포를 얻어야 하는데 채집 후 분석을 통해 세포 양이 목표보다 적은 경우 다음 날 다시 채집을 시도한다.

이씨가 조혈모세포 기증을 결심한 계기는 매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2022년 이씨 매형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가족 모두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항암, 방사선 치료부터 조혈모세포 골수 이식까지 받았던 매형은 8개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입원 전 교회에 다녀왔다. (조혈모세포 기증이) 왜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했다"며 "매형 생각이 나 눈물이 나기도 했다. 마취할 때도 아팠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형도 항암치료 했을 때 똑같이 했겠구나 하는..."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21일 퇴원한다. 그는 "주변에 조혈모세포 기증에 관심은 있지만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며 "기증 독려 캠페인을 개인적으로 벌일 생각이다. 매형 일을 겪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는다기보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남호씨가 모아온 헌혈증서. 총 135회 헌혈했다. /사진제공=이남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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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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