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는 나와 함께
젤다 피츠제럴드 지음 | 최민우 옮김 | 휴머니스트 | 452쪽 | 1만7500원
젤다 피츠제럴드(1900~1948)는 소설의 주인공 ‘앨라베마’처럼 실제로 무용수를 꿈꿨다. 휴머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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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물결 이후 젤다의 예술가로서 욕망과 재능 등이 재평가되며 그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긴 했지만, 짧은 단편과 에세이 외에 국내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 정식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가와 무용수 등 다양한 꿈을 꾸었던 젤다는 처음이자 유일한 장편에서 자신을 투영한 것 같은 여성 앨라배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고지식해 보이는 베그스 판사의 딸들 중 하나인 앨라배마는 무도회장에서 장교들과 사교를 즐긴다. 아버지는 조신한 품행을 유지하라고 하지만 앨라배마는 “저는 그냥 포치에 앉아 날짜나 세면서 모든 게 썩어가는 꼴을 바라보고만 있는 게 지겹다고요”라고 말한다. 이후 앨라배마는 무도회장에서 만난 장교 데이비드와 결혼하지만, 남편은 “앨라배마를 마치 자기가 그린 그림인 양 친구들에게 전시”할 뿐이다. 어느 날 공허한 마음을 느끼는 앨라배마에게 ‘발레’라는 탈출구가 찾아온다.
이야기는 총 4부로 이뤄져 있는데, 2부의 후반쯤부터 앨라배마가 발레에 몰두하게 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진다. 처음엔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으나 앨라배마는 “왜?”라는 사람들의 물음 속에서도 발레를 놓지 않는다. “(발레라는) 목표에 도달하면 자기를 몰아붙이던 악마를 몰아낼 것 같았고, 스스로를 입증함으로써 오로지 자신에 대한 확신 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속 앨라배마는 젤다와 달랐다. 데이비드의 반대에도 나폴리 오페라 극장이 제안한 발레리나 데뷔 기회를 잡고 그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앨라배마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듯했던 나폴리에서의 생활은 발에 있던 물집이 세균에 감염되며 장애물을 맞는다.
소설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한 편이다. 다만 앨라배마와 젤다의 상황이 겹치는 점이 많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좋은 유명 인사의 사소설쯤으로 읽힐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인지 번역을 맡은 작가 최민우는 해설에서 “무엇을 썼는가보다는 어떻게 썼는가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소설”이라며 “이 작품의 핵심은 내용이 아니라 스타일, 다시 말해 문장”이라고 말한다.
문장이 쉽지는 않다. 생경한 표현과 수식이 많다. 길이가 긴 문장들은 한 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쉼표를 찍고 싶은 욕구가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개 타협을 통해 인생이라는 흉벽을 쌓는 동안 분별력 있게 순종함으로써 난공불락의 성채를 올리고, 감정을 철회함으로써 철학적 도개교를 조립하며, 신 포도에서 짜낸 펄펄 끓는 기름에 약탈자를 담근다”는 식이다.
다만 “열입곱 살의 나이에 소녀는 가능성을 탐식하는 철학적 대식가가 되어 가족들의 식사 자리에서 던져진 좌절의 뼈를 골수까지 빨아먹고도 늘 허기졌다” 등 젤다가 느낀 절박한 상황과 감수성을 표현한 문장들과 친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면 더욱 매력적인 소설로 다가설 수 있다. 그렇기에 “‘왈츠는 나와 함께’는 여전히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절박함에 감응할 수 있는 친구를”(최민우)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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