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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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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의 변론 동영상은 헌법재판소 웹사이트에 모두 공개돼 있다. 변론 종결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선고가 이뤄지지 않으며 평의 진행 및 선고 예상에 관해 억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적어도 변론 과정에 대하여는 그럴 일이 없다. 헌법재판관 그리고 소추위원과 피소추인이 심판정에서 한 발언과 행동을, 언론 매체의 개입을 거치지 않고, 국민들이 스스로 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판사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은, 그 결론의 정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결정의 내용과 논리가 공개됐기 때문에 결정 자체에 대한 검증과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날’이라고 쓰여 있는 형사소송법 조문을 달력의 ‘날짜’를 기준으로 할지 아니면 물리적 시간 개념에 따라 ‘24시간’으로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전에 없던 논의가 이뤄졌다. 결정 이유가 공개되지 않거나 ‘구속의 사유가 없거나 소멸되었으므로 구속을 취소함이 상당하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끝났다면 - 아쉽게도 법원 결정 중 상당수는 이런 식으로 법조문 규정을 반복할 뿐 실질적 판단 이유를 기재하지 않는다 - 이런 논의조차 이뤄질 리 없다.

판결서 공개는 법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사람이 아닌 법의 지배가 이뤄지려면, 사법부가 법을 해석·적용하는 기준이 공개돼야 하고 그러한 해석·적용의 정당성이 검증돼야 한다. 윤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 및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이후, MBC는 구속 취소 결정에 따라 검사가 석방한 뒤 즉시항고한 사건에서 대법원이 즉시항고를 부적법하다거나 위헌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던 선례를 찾아내 보도했고 SBS는 대법원이 구속 취소에 대한 검사의 즉시항고 사건에 판단했던 사례를 확인했다. 부족하나마 판결서 열람 제도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법원이 자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판결서를 입수하는 방법은 3가지다. 판결서 사본 제공신청 제도는 사건번호를 특정해 신청해야 한다. 구체적 사건에 대한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신청 자체가 어렵다. 판결서 인터넷 열람 제도를 통해서는 2013년 1월1일 이후 확정된 형사 판결, 2015년 1월1일 이후 확정되거나 2023년 1월1일 이후 선고된 민사·행정·특허 사건 판결을 열람할 수 있다. 판결서 방문 열람은 대법원 내규 제574호가 정하는 특정 대상자가 사전 예약을 통해 일산에 소재한 법원도서관 특별열람실에서 판결서를 찾아볼 수 있는 제도다. 판결서 열람 제도는 임의어 검색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사용자로서의 경험에 관해 굳이 더 이상 얘기하지는 않겠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한 비실명화도 문제다. 전 국민이 다 아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형사 판결조차 알파벳으로 비실명 처리된 판결서, 심지어 A부터 Z까지 26글자로도 부족해서 AE, AF처럼 2개 이상의 알파벳으로 비실명 처리한 이름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해가 쉽지 않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 실명이 공개된 판결서는 물론이고 당사자들이 제출한 서면이나 자료도 모두 공개되고 구술변론 녹음 파일과 녹취록까지 웹사이트에 바로 게시되는 것과 차이가 크다. 미국의 하급 법원 역시 재판기록은 원칙적으로 공개라고 보면 무리가 없다. 형사 사건에서도 기소 이후에는 수사기관의 영장청구서, 영장 청구 사유에 관한 담당 수사관의 인증진술서 등이 공개된다.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헌법 제109조 본문의 규정이다. 한국의 법원은 공개 법정에서 재판을 하니까 원칙적으로 누구나 법정에 출입해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헌법 제109조의 문언과 입법 취지가 ‘공개된 법정’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당사자나 변호사가 아니면 공개된 법정에 가도 심리와 판결의 내용을 알기 어렵다. 직접 당사자가 아니면 파악할 수 없는 내용의 심리와 판결을 법정에서 했다는 이유로 ‘공개’라 할 수는 없다.

재판의 공개는 어떤 면에서는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사법부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사법부는 행정부와 달리 자신의 결정을 집행하는 물리적 강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법부 스스로 법의 해석·적용에 관한 권위를 획득하고 유지해야 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원천은 결국 국민의 신뢰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판결을 해도 그것이 직접 관여한 당사자나 변호사의 파일 속에만 머무른다면, 혹은 개인정보 보호라는 방어막 뒤에 숨겨져 있다면, 대체 무슨 수로 법원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권위를 유지한다는 말인가.

경향신문

유정훈 변호사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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