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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일)

“좋은 기업을 적정가에 사 장기 보유”… 60년간 연평균 19.9% 수익[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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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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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롤모델을 꼽으라면 상당수가 워런 버핏을 떠올릴 것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버핏이 세운 원칙을 기반으로 자신 또한 성공한 투자자가 되기를 꿈꾼다. 흔히 ‘오마하의 현인(The Oracle of Omaha)’으로 불리는 그는,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행하기 어려운 투자 원칙을 오랜 기간 실천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가 이끄는 투자기업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기준 약 8500억 달러(약 1130조 원)의 시장가치를 지닌 거대한 투자회사로 성장했다. 버핏의 성공은 단순히 운이 아니라 명확한 원칙과 철학의 산물이다.》

버핏은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증권 중개인이었으며 나중에는 미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그 덕분에 버핏은 어린 시절부터 금융과 경제에 관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버핏은 17세이던 1947년 금융과 투자 분야에서 더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해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 입학했다.

그러나 와튼스쿨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당시 와튼스쿨에서 강조하던 금융이론들이 기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그는 1949년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가치투자 철학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가진 버핏으로서는 와튼스쿨에서 배우기보다 스스로 가치투자를 공부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학비가 싸고 집에서도 가까웠던 링컨 네브래스카대(UNL)에 진학했다. 버핏은 그곳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스스로의 투자 철학을 더욱 구체화해 나갔다.

1956년 투자조합인 버핏 파트너십을 창업한 그는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전략을 펼쳤다. 1962년경 그는 직물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회사의 장기적 비전에 대한 확신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버크셔 주식이 단기적으로 저평가됐다고 판단했고, 기업을 부분적으로 청산하면 빠르게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계산을 깔고 있었다. 즉, 버핏이 평소 추구하던 장기투자 철학과는 정반대의 결정을 했다.

이 투자 과정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버핏은 버크셔 주식을 처음 매입했을 때 경영진과의 의견 충돌로 인해 감정적인 결정을 내렸다. 경영진과의 회의에서 화가 난 버핏은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했고, 1965년 아예 버크셔를 인수했다. 그러나 버핏은 이후 이 결정을 두고 수차례 후회했다. 섬유사업을 유지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본을 허비했고, 결국 1985년 직물사업을 완전히 중단했다.

다만 버핏은 이 실패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그는 이후 기업의 내재가치와 경쟁력, 장기적 전망을 철저히 분석해 투자하는 현재의 투자 철학을 확립하게 된다. 버핏은 이후 버크셔를 통해 △보험(가이코) △소비재(시즈캔디) △운송(BNSF) △에너지(셰브론) 등 다양한 산업의 기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수하거나 투자하며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결국 실패했던 직물회사를 뛰어난 장기투자 지주회사로 전환하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지주회사로 성장시킨 것이다. 안정적인 사업 모델과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은 엄청난 부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투자 키워드: 장기투자와 가치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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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의 투자 철학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가치투자’다. 그는 철저히 자신이 이해하는 사업에만 투자한다. 단순히 주식 가격의 움직임만을 좇기보다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과 경영진의 역량, 그리고 시장에서의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갖춘 기업을 찾아내 장기간 보유한다. 실제로 그는 1988년 코카콜라에 처음 투자한 이래 30년 넘게 이 주식을 보유하며 지속적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애플,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버크셔의 주요 투자 기업들 역시 그의 장기적이고 가치 중심적인 투자 원칙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버핏이 코카콜라 주식을 처음 사게 된 배경도 재밌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콜라를 매우 좋아했는데, 콜라의 브랜드 가치와 안정성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과감히 투자를 결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코카콜라 주식을 매입한 이후 하루에도 몇 병씩 콜라를 마시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버핏은 종종 자신의 투자 방법을 ‘좋은 기업을 적정한 가격에 사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버핏에게 있어 투자란 복잡한 것이 아니다. 기업의 실질적인 내재가치를 정확히 파악한 뒤 시장 가격이 저평가됐을 때 매수해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단순한 것이다. 이를 통해 버핏은 1965∼2024년 연평균 19.9%의 투자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투자 세계에서 전설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참고로 같은 기간 미국 S&P500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10.4%였다.


‘기부왕’ 기부처도 엄격히 선택


버핏은 단지 뛰어난 투자자로서뿐만 아니라 기부를 통해 부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6년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까지 약 58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그의 기부 철학은 ‘부의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의 결과이므로 다시 사회로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자신이 기부한 돈이 세상을 더욱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기부처를 신중히 선택하고 기부금의 효과성을 엄격히 평가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부에 대한 그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바로 자신과의 점심식사를 경매에 부쳐 수익금을 기부하는 행사, 즉 ‘버핏과의 점심’이다. 이 행사는 매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며 낙찰가가 때로 수백만 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버핏은 자신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투자와 인생에 관한 조언을 아낌없이 나누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에 필요한 ‘Pay it Forward’


버핏의 투자와 기부 철학은 한국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한국의 투자 환경은 종종 단기적인 성과나 주가의 급등락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비이성적인 이슈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테마주가 나타나며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반복된다. 또한 일부 사기성 투자자들이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기업의 주가를 억지로 부양시키며 일반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뒤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사례도 자주 있다. 결국 이러한 행위들은 주식시장에 대한 기피를 불러오고 한국의 증권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이러한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버핏의 투자 철학처럼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과 가치를 철저히 평가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한국 경제도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투자로 얻은 부를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는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다음 사람에게 갚자)’ 정신이 더욱 확산됐으면 한다. 한국의 투자자들이 가치 있는 기업을 발굴해 장기간에 걸쳐 함께 성장시키고, 그렇게 쌓은 부를 사회적 가치로 환원할 수 있다면 한국 경제는 더욱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부를 독점하면 돈의 흐름은 정체되고 사회적 발전은 더디게 된다. 돈이 사회를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은 버핏이 지속적으로 실천해 온 투자와 기부에서 나온다.

버핏은 본인의 부는 잠시 맡고 있는 것이며, 이를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은 결국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철학을 가진 투자자들이 늘어나 기업과 투자자, 그리고 사회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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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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