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경기 예측 박사’
경제 상황을 잘 예측한다고 해 ‘닥터 코퍼(Dr. Copper, 구리 박사)’로 불리는 구리 가격이 올해 들어 계속 오르고 있다.
구리 가격은 그동안 글로벌 경제 흐름과 비슷해 경기 선행지표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전 세계에 ‘트럼프세션(트럼프와 침체를 뜻하는 리세션을 합친 말)’ 우려가 커지는 상황인데도 구리 가격이 상승하는 ‘탈동조화(디커플링)’ 흐름이 나타난다.
같은 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구리 선물은 사상 최고 수준인 t당 1만12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구리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구리는 자동차·건설·해운·반도체 등 거의 모든 제조업에서 사용된다. 전기·열 전도성이 좋고, 가공성이 뛰어난 데다 자연환경에서 쉽게 손상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다. 특히 구리는 ‘새로운 석유’로도 불린다. AI(인공지능) 시대의 인프라는 사실상 구리 없이는 구축이 힘들다. 데이터센터 서버, 고성능 GPU(그래픽 처리장치), 전력공급장치, 냉각시스템 등에 구리가 필수다.
미국의 관세전쟁 영향도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가 높아졌고, 금과 은 가격이 뛰면서 투자 수요가 구리로까지 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5%의 구리 관세 부과를 시사하면서 미국 내 구리 선수요(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가격을 자극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라 구리가 미국으로 몰리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리 공급이 주춤한 것도 가격 상승의 이유다. 남미 주요 구리생산국인 칠레와 페루에선 생산 차질, 노조 파업, 환경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신규 광산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 기존 구리 광산들이 노후화하면서 채굴되는 구리 광석의 순도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따르면 구리 공급은 2016년 이후 연평균 1.2% 늘고 있지만 구리 수요는 연평균 1.9% 증가해 만성적인 공급난이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24일 머큐리아의 전망을 인용해 “구리 가격이 1t당 1만3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 연준에서 올해 정책금리 인하 전망을 연 2회로 유지하면서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구리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연준은 최근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했는데, 이는 구리 가격의 흐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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