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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염포 덮어도 30분 버틸 뿐”…산불지역 국가유산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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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경북 의성 단촌면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고운사가 화마에 무너져 국가보물로 지정된 가운루,연수전, 우화루 등이 전소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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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참담합니다. 사찰을 지키지 못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운사 보장 스님)

26일 오후 1시 반경 경북 의성군 ‘고운사(孤雲寺)’. 어제까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사찰이 있던 자리는 시꺼먼 잔해와 재만 가득했다. 대웅전과 명부전은 불길을 피했으나 국가유산 보물인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가운루 건너편엔 범종만 금이 간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주변도 참혹했다. 나무들은 검게 타 쓰러졌고, 남은 잔불들에선 연기가 피어 올랐다. 가운루 자리에 허망한 표정으로 있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어제 오후 4시쯤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며 불씨가 날아왔다”며 “급히 피했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왔는데, 손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한숨지었다.

26일 대형 산불로 전소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에서 스님들이 잔해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 산불로 고운사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를 비롯해 연지암, 해우소, 정묵당, 아거각, 약사전, 연수전, 고운대암, 극락전, 만덕당, 종무소가 불탔다. 2025.03.26.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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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소식에 달려온 신도들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한금 씨(60)는 “산불이 걱정돼 24일부터 와 있었다”며 “절에 있던 보물 옮기는 작업도 도왔는데 다 지키지 못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고운사에서 30년 동안 석축 공사를 했다는 70대 김모 씨는 “가운루가 지난해 보물로 승격돼 너무 기뻤는데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운사 앞 최치원문학관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19년 세운 문학관 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 다행히 지하 방화문을 닫아둬 수장고 유물들은 손상되지 않았다.

고운사가 무너지자 인근 국가유산이 있는 지역들도 초긴장 상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10시 현재 병산서원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지역까지 산불이 근접했다. 만일에 대비해 서원에 물을 계속 뿌리고 있으며, 류성룡 선생 위패 등을 옮길 준비도 하고 있다.

앞서 이날 오전 찾아간 안동하회마을은 밤새 서풍이 불어준 덕에 산불이 비켜 갔다. 하지만 멀리서 넘어온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언제 바람 방향이 바뀔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북 청송의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사남고택’은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예천소방서가 26일 소방대원 100명과 대용량 방사포, 물탱크, 소형펌프 등을 동원해 안동 하회마을로 다가서는 불길에 대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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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퍼지고 있는 안동과 의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외에도 국보 5건과 보물 50건이 밀집한 지역이다. 특히 봉정사의 국보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다. 대웅전도 국보이며, 보물인 화엄강당과 고금당도 나무로 지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전날 사찰의 주요 유물을 긴급 이송했으며, 극락전 등엔 방염포를 씌워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입구가 많아 화염이 빠르게 번진다. 발열과 연기량도 많아 진압하기가 특히 까다롭다.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도 안심할 순 없다. 2005년 강원 양양 화재 당시 보물 ‘낙산사 동종’은 쇠인데도 녹아내렸다. 인근의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등도 위험하다. 한 박물관 방재전문가는 “금속보다 내열성이 강한 석조조차 고열이 지속되면 터질 수 있다”며 “운 좋게 형태를 유지해도 돌의 경도가 떨어져 결국 부서진다”고 했다.

이원수 국립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방염포가 있어도 겨우 30분가량 시간을 번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엔 소용 없다”며 “문화유산 주위에 폭 1m 이상 해자(垓子)를 파두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의성=조승연 기자 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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