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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일)

꿀벌과 꿀샘식물, 함께 지키는 지속 가능한 미래[기고/권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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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권재한 농촌진흥청장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 이상은 꿀벌의 수분(受粉)으로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약 80%가 꿀벌 덕분이라는 것이다.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꿀벌이 세계 식량 생산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가 최대 69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상기후와 병해충, 꿀샘식물 부족 등으로 꿀벌 개체수가 감소해 양봉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꿀벌 수가 줄어들면 일차적으로 벌꿀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과, 배 등 과일과 채소의 수분이 어려워져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하고 생태계 균형도 무너진다. 결국 꿀벌 감소는 풍성한 우리 식탁을 빈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책 중 하나가 꿀샘식물을 심는 일이다. 꿀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풍부한 먹이가 필요하다. 꿀벌은 꽃에서 꿀과 화분을 모아 에너지를 얻고 살아간다. 인간이 다양한 음식을 섭취해 건강을 유지하듯 꿀벌도 다양한 밀원식물에서 영양분을 얻는다.

농촌진흥청은 2017년부터 매년 양봉농가와 함께 꿀샘식물 식재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산림청과 협업해 각 지역의 토성과 기후에 적합한 나무를 선정하고 지역 특화 벌꿀을 생산할 수 있는 밀원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올해는 3월 21일 경북 칠곡군에서 헛개나무를 심었다. 칠곡은 1907년 독일인 구걸근(카니시우스 퀴겔겐) 신부가 서양종 꿀벌을 본국에서 들여와 양봉을 처음 시작한 곳이다. 또한 국내 유일의 양봉산업특구로 지정돼 그 역사가 깊고 상징성도 크다.

헛개나무는 6월에 꽃을 피운다. 5월 아까시꽃을 이어 꿀벌에게 중요한 먹이원이 된다. 헛개나무 꿀은 간 기능 개선, 면역력 강화 등 건강 기능 성분이 있어 지역 특산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꿀샘식물 식재는 단순한 나무 심기가 아니라 꿀벌 보호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이번 행사에는 청년 양봉인과 지역 어린이들도 참여해 생태계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인 꿀벌의 가치를 되새겼다.

2029년 한·베트남 FTA로 베트남산 벌꿀이 무관세로 수입될 예정이다. 양봉산업의 경쟁력 강화 대책이 시급하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밀원수 조성 사업을 확대하고 국산 벌꿀의 품질 고급화 등을 통해 양봉산업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말이 있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고사성어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는 의미다. 꿀벌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를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한다. 꿀샘식물 식재 행사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전국 각지로 확산될 때 꿀벌과 인간이 함께 살아갈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권재한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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