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보 필수 산업·공급망 보호 명분
전체 車 수출 절반이 미국… 한국 비상
“산업 침체·동맹과 불화”… 美서도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한 뒤 포고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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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외국산 자동차에도 25% 관세를 물린다. 당장 다음 달 초부터다. 자동차가 대(對)미국 수출 품목 1위인 데다 경쟁국에 비해 미국 내 생산 비중이 낮은 한국으로서는 비상 사태다. 수입차 관세 발효 직전 발표될 미국의 국가별 상호관세가 한국 차의 가격 경쟁력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美 일자리 가져간 우방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껏 우리 일자리와 부를 가져간 우방들을 상대로 대가를 청구하겠다”며 “우리가 할 일은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모든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선 목적은 자국 내 생산 유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생산된 차에는 전혀 관세가 없다. 기업들이 관세를 물지 않으려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재정을 확충하는 데에도 관세가 유용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차 관세 부과가 연간 1,000억 달러(약 147조 원)의 세수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명분은 국가 안보다. 그가 이날 서명한 포고문에 법적 근거로 거론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제품이 국가 안보를 위협할 때 긴급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12일 발효된 철강·알루미늄 대상 25% 관세 부과에도 1962년 제정된 이 법이 쓰였다. 불공정 무역 등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려면 사전 조사가 필요하므로 안보를 구실로 당장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이 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부과 대상은 완성차와 부품이다. 포고문에 따르면 승용차와 경트럭뿐 아니라 엔진과 변속기 등 주요 부품에도 25% 관세가 적용된다. 다만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이 적용되는 부품에 대해서는 비(非)미국산 관세 부과 프로세스가 수립될 때까지 관세 부과가 유예된다.
상호관세까지 설상가상
26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롱비치항구에 있는 일본 완성차 제조업체 도요타의 차량 수입 시설 도요타로지스틱스서비스에 신차들이 주차돼 있다. 롱비치=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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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는 미국 동부시간 기준 4월 3일 0시 1분부터다. 부품은 부과 시점이 한 달가량 늦을 전망이다. 관보에 공시되는 날로 하되 5월 3일 이전이라고 포고문은 규정했다.
관세를 피하는 방법은 현지 생산 확대뿐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기준 70만 대인 미국 내 연간 생산 역량을 판매량의 70%인 120만 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새 설비 구축엔 시간이 걸린다. 이를 달성하더라도 한국 등에서 직접 수출하는 30%는 관세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24일 백악관에서 4년간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정의선 회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가 면제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어디까지나 미국 내 생산 물량에 해당한다.
“한국·일본 등에 파괴적 영향”
관세의 효용을 강조한 백악관과 달리 경제 전문가들은 부작용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의 조나단 스모크 수석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미국산 차량도 부품은 캐나다나 멕시코에서 제조되는데 여기에 관세가 붙는다면 생산 감소를 피할 수 없다”며 “결국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냈고 한미 FTA 타결의 주역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논평을 통해 “수입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일본, 한국, 멕시코, 캐나다, 유럽 등 미국과 가까운 교역 상대국 다수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고, 무역협정하에서 미국의 약속이 갖는 가치에 의문을 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조치가 자동차 산업 침체를 부르고 미국과 동맹국 간 관계를 경색시킬 것으로 전문가들이 보고 있다고 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성명에서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고,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 노동자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고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환영했지만, 미국 주요 자동차 기업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폭락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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