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에서 줄이거나 거르는 일은 어떨까. 당장 앞 문단에 널린 말을 살펴보자. ‘흐릿했다’는 ‘흐릿하였다’의 준말. ‘제는’은 ‘적에는’이, ‘안’은 ‘아니’가 줄어든 말이다. ‘그래도’는 ‘그러하여도’에서 ‘그러해도’를 거쳤다. ‘네거리서’의 ‘서’는 ‘에서’의 준말. ‘않은가’ 또한 ‘아니한가’가 줄었다. ‘겹쳤단다’는 꽤 복잡하다. ‘겹치었다고 한다→겹쳤다고 한다→겹쳤다 한다→겹쳤단다’로 모습이 바뀌었다. ‘날씨군’의 ‘군’은 ‘구나’나 ‘구먼’이, ‘좀’도 ‘조금’에서 온 것. ‘마셨을’은 ‘마시었을’이 본말이다. ‘대가(代價)려니’는 ‘대가이려니’에서 서술격조사 ‘이’를 생략했다.
이렇게 모든 문장에 줄어든 말이 있어도 딱히 거북스러운 구석이 없다. 줄일 수 있으면 아무 말이나 괜찮다는 얘기일까. ‘내년도 증원을 철회하잔 학장들의 조정안’ ‘경기전망지수가 지난 1분기보단 올랐지만’ ‘전화 건 사람이 친구란 말만 믿고’…. 요즘 종이 매체에서 유달리 토씨나 어미로 쓰는 ‘는’을 줄이는 풍조가 생겼는데. ‘철회하자는’ ‘1분기보다는’ ‘친구라는’과 비교해 보자. 구어체(口語體)인 탓인지 준말 격이 좀 떨어져 보인다. 결국 익숙함이 문제겠으나, 일반 뉴스 기사에서는 아직 신경 써서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숨 막힐 듯한 거리 헤치며 출근하다 눈이 번쩍했다. 길 건너 양지바른 자리에서 손짓하는 목련. 올 들어 처음 만난 봄꽃이다. 그러고 보니 발길 끊은 산속 진달래가 목을 빼고 있을 텐데. 비라도 주룩주룩 내려 산불이며 뿌연 공기 재워주면 참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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