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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 (월)

[법없이도 사는법] ‘확대사진’이냐 ‘조작’이냐, 논란의 판결 내용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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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온 뉴질랜드 출장사진… 李 모자엔 '골프장 볼마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맨 오른쪽) 대통령 후보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인 2015년 뉴질랜드 출장지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유동규(가운데) 전 기획본부장, 고(故) 김문기(뒷줄 맨 왼쪽) 개발사업 1처장과 함께 촬영한 사진. 이 사진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당시 이 후보가 착용한 모자에‘볼마커(골프장에서 쓰는 도구)’가 꽂혀 있다”며“출장 가서 골프도 친 것이냐”라고 했다. /국민의힘 이기인 성남시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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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변호사로서 수년째 법조를 취재해왔습니다. 뉴스 속의 법 이야기를 알기 쉽고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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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사진 중 일부를 부각시킨 부분을 두고 ‘조작’이라고 하면서 정치공방으로까지 비화됐습니다. 국민의힘에서는 ‘주정차 위반 차량의 번호판 확대 사진도 조작이냐’는 조롱이, 민주당에서는 당시 사진을 게시한 의원에 대한 사퇴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고(故)김문기 성남도개공 개발사업1처장을 몰랐다고 한 발언 및 2015년 1월 호주 출장 당시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한 발언 등으로 기소됐습니다.

문제가 된 이 대표의 발언은 2021년 12월 29일 채널 A에서 있었던 ‘청년과의 대화’입니다. 당시 이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진을 4명 찍어 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사진 중의 일부를 떼 내 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을 두고 검찰은 이 대표가 ‘해외출장 기간 중 김씨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고 허위 발언으로 기소했습니다. 1심은 당시 함께 골프를 쳤던 유동규씨 등의 증언을 근거로 이 발언은 허위라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2심은 이 발언을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대표 발언 중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부분이 없고, ‘성남시장 때는 하위직원인 김문기씨를 몰랐다’는 반박 논거 중 하나로 ‘사진 조작’을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그러면서 그러면서 문제의 사진을 두고 “‘조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박 의원이 게시한 사진은 이 대표, 김 전 처장,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 수행비서였던 김모씨 네 명이 담긴 사진입니다. 2021년 12월 대장동 핵심 실무자이던 김 전 처장의 사망 후 이 대표와 그와의 관계가 문제가 되자 2015년 호주 출장 당시 찍힌 사진을 올린 것입니다.

박 의원은 사진과 함께 ‘이재명 후보님, 호주 누질랜드 출장 가서 골프도 치신 건가요? 곁에 서 있는 고 김문기 처장과 한 팀으로 치신 건 아닌지요’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의 모자에는 ‘볼마커’가 꽂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전체 10명 중 이 대표를 포함한 네 명만 부각시켰기 때문에 ‘조작’이라는 게 2심 판단입니다. 2심은 “이 사진은 원본이 아니다. 원본은 위 4명을 비롯해 해외 출장을 함게 한 10명이 앉거나 서서 찍은 단체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진은 ‘원본 중 일부(피고인의 모자가 부각되고 피고인과 김문기를 포함한 소수만이 한 프레임에 들어갈 수 있도록)를 떼어 내’ 보여준 것이라는 의미에서 ‘조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2심의 이런 판단은 “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한 적 없다. ‘사진이 조작됐다’고 한 것”이라는 이 대표 주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게다가 원본 중 일부가 부각됐다는 의미에서 조작이 맞으니 이 대표 발언은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통상 사진과 관련한 ‘조작’은 없는 내용을 합성하거나 추가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진 중 일부를 부각시킨 행위는 조작이라기 보다는 편집 내지 확대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원본 중 일부를 떼어 내 보여줬다는 의미’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정치공세가 아닌 판결문의 표현으로 ‘조작’이 쓰인 것을 두고 법원 주변에서도 필요 이상의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2심은 발언 전체가 유권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보다는 ‘문언’ 그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 어디에도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내용이 없으니 검찰의 공소 내용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확장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제기된 시점은 이 대표가 대장동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실무자였던 김문기씨가 사망한 직후였습니다. 이 대표와 김씨와의 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던 중에 이 대표가 한 ‘골프 사진이 조작됐다’는 발언은 문언 그대로 사진조작을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김씨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 즉 김씨와의 교류를 부인하는 의미로 보는 게 더 상식적입니다.

검찰이 27일 재판부인 서울고법 6-2부에 상고장을 내면서 결국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조작’인지 ‘확대’인지, 발언의 문언적 의미를 중시해야 하는지 전체적 맥락을 봐야 할지도 결국 대법원이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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