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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 (월)

“사람 뛰는것보다 빨라” 시속 8.2㎞로 번진 의성 산불, 역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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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산불]

총력 진화에도 커진 산불 왜

순간초속 28m 태풍급 강풍 주요 원인… 의성-영덕 등 진화율 50∼60% 그쳐

산림청 “바람 방향과 세기가 관건… 남풍땐 안동, 북풍땐 청송 더 번져”

끊이지 않는 불길 27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고상리 인근 중앙고속도로 옆 산등성이를 따라 불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엿새째 꺼지지 않고 안동까지 번졌다. 안동=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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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디로 도망치란 말이고.”

27일 경북 안동시 안흥동에서 김덕만 씨(72)가 ‘시내 방면으로 산불이 확산 중’이라는 재난문자를 보며 말했다. 남후면 방면 야산에선 붉은 불꽃이 보였다. 시내 거리는 이미 산에서 넘어온 매캐한 연기로 가득해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김 씨는 “말도 마이소. 숨도 제대로 못 쉬겠니더”라더니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영남 지역을 삼킨 화마는 이날도 확산세를 이어갔다. 24일 한때 71%까지 올랐던 경북 의성군 산불 진화율은 이날 62%로 떨어졌고, 영덕군 진화율은 55%, 영양군 진화율은 60%에 그쳤다.

● “사람 뛰는 것보다 빨라”… 질주하는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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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 진화에도 확산세가 줄지 않는 이유는 엄청난 확산 속도 때문이다. 이날 산림청 산하 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는 미국 위성을 활용한 열 탐지 자료 분석 결과 의성 산불 진행 속도가 시간당 8.2km로 역대 가장 빠른 속도라고 밝혔다. 원명수 센터장은 “2019년 강원 속초·고성 산불 때 시간당 초속 33m 바람이 불었고, 이때 기록된 산불 확산 속도는 시간당 5.2km”라며 “시간당 8.2km는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빠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남권 산불이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데는 이 같은 빠른 속도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24일까지 의성에 머물렀던 산불은 25일 오전부터 인근 안동과 청송으로 확산하기 시작해 불과 12시간여 만에 51km를 이동해 영덕까지 이르렀다. 산림청 관계자는 “영양과 영덕 등에서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가 다수 사망한 이유”라고 했다.

산불 속도가 빨라진 건 최대 순간 풍속 초속 28m 태풍급 강풍이 원인이다. 이 강풍이 시시각각 방향을 바꾸며 진화까지 어렵게 하고 있다. 이날 오후 기준 이번 산불 영향 구역은 3만8665ha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 피해 면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 험준한 지형에 연무로 지리산 진화도 난항

이날 산불 사망자도 추가됐다. 영덕군 영덕읍에서 60대 산불예방진화대원이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고, 청송에서 80대 여성이 사망한 사실이 드러나 총사망자는 28명으로 늘었다. 서산영덕고속도로에서는 청송휴게소 양방향 건물이 전소됐다. 인근 시설이 모두 불에 타 청송 지역 희생자 3명의 장례는 100km 넘게 떨어진 대구에서 치러지게 됐다.

산불 피해 지역에서는 단전 단수까지 이뤄지며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안동에서는 산불 피해로 가압장에 전기 공급이 끊겨 일직, 남선, 길안, 임하, 남후, 임동 등 일부 지역에 이틀째 수돗물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덕 일부 지역에서도 단전 단수가 이어졌다. 21일 경남 산청에서 시작돼 지리산국립공원까지 번진 산불은 천왕봉 4.5km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했다. 공원 내 피해 면적은 40ha로 추정된다. 산림당국이 산불지연제를 뿌리는 등 진화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험준한 지형에 연무까지 겹쳐 난항을 겪고 있다. 27일 투입 예정이었던 미군 CH-47(치누크) 헬기 등 4기는 기상 악화로 뜨지 못했다. 이미 산불이 많이 번진 주왕산국립공원은 탐방지원센터 1곳과 간이화장실 2곳이 전소했다. 피해 면적은 1000ha로 추정된다.

● 울주 산불 128시간 만에 진화

이날 오후 8시 40분경 울산시는 “울주 온양 산불이 발생 엿새째(128시간 8분) 완전히 진화됐다”며 공무원 비상동원 명령도 해제했다. 저녁 들어 시간당 5mm 내외 약한 비가 내려 진화를 도왔다. 산림 피해 면적은 931ha(축구장 1330개 규모)다.

의성에서는 오후 6시경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지만 1mm의 강수량을 기록하고 30분 만에 그쳤다. 산청에도 10분간 비가 내렸지만 강수량은 2mm에 불과했다. 다음 달 6일까지도 산불 지역에 비 소식이 없고 영남에는 건조특보가 발령된 상태다. 산림청은 “향후 바람 방향과 세기가 관건”이라며 “남풍이 세게 불면 안동과 영양, 북풍이 거세지면 청송, 의성 등의 산불이 더 번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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