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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화)

YS도 우려한 '코리아 패싱'... 1994년 제네바 합의 앞서 "북미대화는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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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1994년도 외교문서 2,506권 공개
제네바 합의 앞두고 '한국 패싱' 우려 커져
YS, 클린턴과 통화에서 우려 강하게 전달

“핵 문제 교섭의 당사자인 우리가 배제된 채 미국과 북한 간에 논의되고 있는 사실을 굴욕적으로 생각하는 의견이 일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1993년 1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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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북핵 협상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합의를 두 달 앞두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다. 아울러 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한국을 패싱할 수 있다는 관측이 무성한 현재의 상황과 흡사하다.

외교부는 제네바 합의를 둘러싼 치열한 외교전을 포함해 생산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 해제된 1994년도 외교문서 2,506권(38만 페이지)을 28일 공개했다. 문서에 따르면 당시 김 대통령은 8월 17일 클린턴 대통령과 38분가량 전화통화를 했다. 같은 달 5~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3단계 북미 고위급 회담' 직후 이뤄진 통화다. 고위급 회담에서는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경수로 지원 △원자로 건설 동결 △잠정 에너지 제공 등 '주요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국내에서) 미국이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론마저 있어 우리 정부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며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한국은 협상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북미 합의 발표문에 '남북대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의 역할과 북한의 '통미봉남' 기조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아직도 한국과의 실질적 관계 진전 없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미 양국은 북측의 한미 이간 술책을 계속 경계하면서 남북대화 진전의 중요성을 북측에 확실하고 끈질기게 인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진행해온 핵 개발에 대한 투명성 확보 없이는 '경수로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못 박기도 했다. 해당 문건은 한미 정상 간 통화에 앞서 준비용으로 작성된 것이다. 실제 통화에서 미 측을 향해 어느 정도 수위로 발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당시 3단계 북미 고위급 회담 이후인 1994년 8월 16일 정부의 홍보 대책회의에서도 한국 패싱에 대한 국내 여론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미 합의문에 대한 언론보도 경향을 분석하며 "북측 의무사항은 원칙적인 반면 미측이 취해야 할 조치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미국의) 일방적인 양보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합의문 내용에 남북관계를 언급하지 않아 한국이 소외됐고 한미 공조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고 적시했다. 김 대통령은 이 같은 국내 여론을 의식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문서는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구현모 기자 nine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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