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동정과 공감[내가 만난 명문장/성혜령]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그런데 슬퍼는 하면서 왜 끝까지 함께해 주지 않는지, 왜 동정만 하고 공감은 안 하는지.”

―인터뷰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중


동아일보

성혜령 소설가


열일곱 살 여름, 나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치료는 순조로웠지만 몸은 무서울 정도로 쇠약해져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 혼자 가늠해 보곤 했다. 그때 나는 분에 넘칠 만큼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아직 어리니까 곧 나을 거라고,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너보다 안 좋은 경우도 많이 봤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을수록 나는 비참해졌다. 그런 말들은 나의 현재를 지워버렸다. 항암제를 맞고 토를 하고 입이 헐고 피부가 벗겨지고 있는 나의 현재를. 학교 대신 병원에 다니게 되면서 부모의 돌봄에 기댄 채 모든 통제력을 잃은 내가 생생히 느끼고 있던 불안과 분노를.

나는 ‘사람들의 고통에 민감해져야지’라고 자주 되뇌었다. 섣불리 위로하고 함부로 무마하지 말아야지, 있는 것을 없는 척하지 말아야지….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름답지 않다. 자주 비틀어지고 사소한 말에 분노하고 과하게 상처받는다. 그런 마음을 애써 다듬고 포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많은 면에서 부족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고통을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인터뷰집을 읽던 중 이 문장이 나를 찔렀다. 어느새 내가 삶이 고단하다는 이유로 나의 고통만 곱씹고 타인의 고통은 외면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이 문장을 읽고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소설을 쓰며 내게 주어진 일을 겨우 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 문장을 아프게 지니며 아낌없이 눈물을 쏟으려고 한다.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사리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해 본다.

성혜령 소설가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