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등 시민권 증빙서류 소지해야만 투표 허용
우편투표, 선거일 이전 소인 찍혀도 나중에 도착하면 무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에 내린 선거제 개편 행정명령은 대통령 권한으로 선거 시스템을 장악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WP는 이 행정명령이 민간 메신저 시그널 채팅방을 통한 군사작전 유출 논란에 덮이는 바람에 마땅히 받아야 할 주목을 덜 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행정명령이 입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방적 지시에 의해 국정을 운영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행정명령의 법적 근거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다른 행정명령들과 마찬가지로 혼란과 변화가 초래될 수 있으며 그 후에야 소송전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정치학 교수인 찰스 스튜어트 3세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선거 행정에 대한 연방정부의 권한을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키우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방향은 전혀 다르지만, 직전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민주당이 추진했던 선거개혁 법안 역시 선거 행정에 대한 연방정부의 권한을 키우려는 시도였다.
이 법안은 2021년 연방하원에서는 통과됐으나 상원에서는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넘지 못했다.
당시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 법안이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거센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는 공개적 반발이 나오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익명을 요구한 한 선거 분석가는 WP에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제 개편 행정명령을 내린 목적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을 찍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투표율을 낮추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선거 부정이 횡행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펴 왔다.
그는 2016년 대선 총투표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뒤진 데 대해 불법 이민자 수백만 명이 불법으로 투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2020년 대선에서 낙선하자 "선거를 도둑맞았다"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했으며, 이는 2021년 1월 6일의 연방의회 의사당 폭동으로 이어졌다.
트럼프의 선거제 개편 행정명령에는 선거일이 지난 시점에 각 주에 도착한 표들의 개표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투표일까지 접수되지 않은 모든 투표지는 무효로 처리해야 하며, 연방 법무부가 이를 단속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로는 선거일 혹은 그 전 날짜의 소인이 찍혀 있다면 선거일이 지난 후 도착한 우편투표도 당연히 개표 대상에 포함된다.
또 트럼프 행정명령의 문구에 따르면 미국 여러 주가 실시 중인 조기투표제도 금지될 소지가 있다.
이런 변화는 대체로 젊은 세대, 비(非)백인, 소외계층 등 민주당 지지 성향이 높은 집단의 투표율을 낮추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명령에는 또 여권 등 미국 시민권자임을 입증하는 서류를 소지한 사람만 연방 선거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고 미국 선거지원위원회(EAC)의 유권자 등록 서식에 시민권 증빙을 추가하라고 지시하는 내용도 담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AC는 의회가 공화당 소속 인사 2명과 민주당 소속 인사 2명으로 구성한 독립기구로,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려면 위원 4명 중 3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의회 입법 없이 EAC에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이 합법인지는 확실치 않다.
일론 머스크가 사실상 지휘하는 정부효율부(DOGE)가 국토안보부(DHS)의 협조를 받아 각 주의 유권자 명부를 검토하기 위한 소환장을 발부받을 수 있고, 이번 명령을 준수하지 않는 주에는 재정 지원이 삭감될 수 있다는 내용도 명령에 포함됐다.
명령에 따르면 법무부, DHS, 국무부, 사회보장국(SSA) 등 연방정부 기관들은 정보 제공 등에 협조해야 한다.
WP는 트럼프의 통치 전략이 "벽에 닥치는 대로 던져 보고 벽에 달라붙는 게 뭔지 보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막으려는 소송이 법원에서 진행되더라도 판결이 나오려면 오래 걸릴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입맛에 맞도록 시스템을 "구부릴"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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