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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트럼프 ‘관세폭탄’, 재무장관 따돌리고 결정…미 증시 ‘박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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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각)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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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현지시각) 오후 4시 뉴욕 주식시장이 거래를 마감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 모든 나라의 대미 수출품에 10%, ‘최악의 침해국’으로 분류한 67개국에 최고 49%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다음날인 3일 나스닥종합지수가 5.97% 하락하는 등 이틀간 11.4% 폭락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는 10.2%, 다우지수는 9.3%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틀새 뉴욕 증시 시가총액이 6조6000억 달러(약 9600조원) 사라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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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미국 증시부터 박살냈다





뉴욕 증시 역사에 3∼4일 이틀은 나스닥지수가 12.32% 폭락(2020년3월16일)한 코로나 팬데믹 때 이후 최악이었다. 유럽 12개국 50개 우량주로 구성된 유로스톡스50은 이틀간 8.3% 하락했고,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5.4%,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우량주로 구성된 항생H지수는 1.4% 하락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1월20일 이후 4월2일까지 기간에도 나스닥지수는 10.3% 떨어져, 세계 주요 지수 가운데 가장 하락폭이 컸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맨 먼저 뉴욕 증시부터 박살낸 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권한을 행사해 매기는 상호관세는 캄보디아가 49%로 가장 높고, 베트남 36%, 중국 34%, 한국 25%, 유럽연합(EU) 20% 등이다. 10%의 기본관세는 5일부터 시행되고, 상호관세는 9일부터 시행한다. 이와 별도로 철강, 알루미늄에 25% 관세 부과가 3월12일부터 시행됐다. 자동차에도 3일부터 25% 관세를 매기고 있다. 트럼프는 반도체에도 곧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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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자유무역 시대에 ‘잊힌 사람들’ 향해 호소…크루그먼 “트럼프는 미쳤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타국에 대한 무역 장벽을 줄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우리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산업을 붕괴시키기 위한 터무니없는 비관세 장벽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 연설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2일을 ‘해방의 날( Liberation Day), 미국의 산업이 부활하는 날’이라고 하면서, 행사에 초대한 전미자동차노조 조합원들 앞에서 “일자리와 공장들이 우리나라로 우르르 돌아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는 “우리는 전 세계 여러 나라들에 의해 가혹하게 희생당해온 위대한 농부들과 목장주들을 위해서도 함께 일어섭니다”라는 말로, 무역협상을 통해 미국 농산물 수출을 촉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해리스 후보를 지지했던 터였다.



트럼프는 그런 주장으로 지난해 11월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미국 제조업의 쇠퇴로 생활형편이 나빠진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 ‘미국 예외주의’로 불리는 나홀로 성장에서 소외되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높은 물가상승에 고통을 겪던 저소득 계층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문제는 그의 주장이 정치적 지지를 얻는 것과, 그런 정책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별개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발표한 상호관세는 시장이 우려하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국제무역이론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트럼프가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제시한 상호관세율이 논리적 근거를 전혀 갖추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상호관세율에 대해 ‘기존 관세와 기타 무역 장벽(규제 등)을 조합해 계산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실제론 ‘2024년 미국과 해당국가간 상품무역 수지를 해당 국가로부터 미국의 상품수입액으로 나눈” 수치로 드러났다.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 기초체력 약한 미국 경제 버텨낼까





트럼프의 협상술을 돌아보면, 그는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먼저 제시한 뒤 점차 낮춰 상대가 양보하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기법을 사용한다.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의 상호관세율을 두고 “핵심은 트럼프가 실제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상대를 압도하고 복종하게 만들려는 ‘지배력 과시’로 봐야 한다”고 했다.



무역 협상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관세 부과는 당장 눈앞의 현실이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 중국의 수입품 3700억달러어치에 매기던 추가 관세를 이번에는 3조3천억달러에 이르는 전세계 수입품에 매긴다. 이번 조처로 미국의 올해 실효관세율이 11.5%포인트 상승한 22.5%에 이르러 1909년 이후 최고가 될 것이라고 미국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2일 내다봤다. 미국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폐쇄적인 시장이 된 것이다.



관세는 수입업자가 정부에 내고, 소비자 가격에 반영한다. 따라서 곧바로 짐을 져야 하는 것은 미국 소비자들이다. 예를 들어 애플이 관세 부과에 따른 비용을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한다면 아이폰 가격이 지금보다 30∼40%까지 올라, 최상위 모델 가격은 333만원에 이를 수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3일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예일대학교 예산연구소는 2일 보고서에서 이번 미국 행정부의 조처로 미국의 물가 수준이 1.3% 오르고, 이는 가구당 2100달러의 손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은 미국 경제활동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를 위축시킨다. 미시건대의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57.0으로 2년 4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소비심리는 이미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예일대 연구소는 미국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올해 0.5%포인트 줄고, 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이 0.4% 쪼그라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전망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처가 상대국의 보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현실은 무역전쟁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4일 “10일 오후 12시 1분을 기점으로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34%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다음날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중국산 광물 자원 수출에 대한 규제도 함께 발표했다. 유럽의 정상들도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며 보복 조처를 포함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 기업들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보류해야 한다며, 연대를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 관리들은 협상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해, 주가 폭락에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수술을 받을 때와 같았다”고 말했다.



골드만 삭스의 분석가 에릭 셰리던은 4일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처로 아마존의 미국 상품 비용이 15∼20% 치솟을 것이라며, 영업이익이 50억∼100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마존 주가는 3∼4일 이틀간 12.8% 떨어졌다. 애플이 15.9%, 테슬라가 15.3%, 엔비디아가 14.6%, 메타가 13.6% 하락하는 등 2023년 초부터 미국 증시의 급등을 주도해온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 종목이 이틀간 평균 12.2% 하락했다. 미국 연방기금 금리 선물 투자자들은 경기 후퇴로 연준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4차례 이상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을 빠르게 수정하고 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4일 공개된 터커 칼슨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주가 하락이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는 중국 인공지능 딥시크(DeepSeek) 발표로 시작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해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번 관세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과 몇몇 측근 인사들이 주도했고, 베센트 장관은 소외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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