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1. 先 지배력 강화·後 증자
첫 번째 논란은 선(先) 지배력 강화·후(後) 대규모 증자다. 한화에어로는 지난 2월 높은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총수 일가 계열사 지배력 강화를 위해 약 1조3000억원을 털어 한화오션 지분 7.3%를 사들인 뒤 최근 3조6000억원 규모 증자를 결정했다. 매입 시점과 목적의 정당성을 두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한화오션 지분 추가 매입 시점(2월)에 관한 의구심이다. 올 초 부채비율이 높았던 데다 2~3년 뒤부턴 선수금이 순차적으로 매출로 인식돼 현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한화에어로는 ‘굳이’ 2월을 골라 총수 일가 3형제 회사로 분류되는 한화임팩트·한화에너지가 지난 2022년 주당 약 2만원대에 확보한 주식을 주당 5만8000원에 매입했다. 부채비율이 높고 수년 뒤 현금 유입이 예상되는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내릴 수 있는 의사결정이라 보기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이다.
한화에어로는 최근 수년간 대규모 해외 수주로 선수금이 늘면서 부채비율이 악화했다.
이는 방위 산업의 특수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방위 산업이나 조선업은 수주로 확보한 선수금을 대규모 부채로 깔고 앉는다. 선수금은 고객(항공사, 조선소 등)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인도받기 전 미리 지급한 금액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상품, 서비스 인도 전까진 수익이 아닌 부채로 분류된다. 선수금은 부채지만, 종국에는 매출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론 ‘양질의 부채’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방산 업종은 대체로 수주가 늘면서 선수금이 집중될 땐 부채비율이 높다가 납품이 이뤄지는 2~5년 뒤부턴 재무 구조가 개선되는 패턴을 보인다. 정리하면, 한화에어로는 대규모 수주에 따른 선수금 증가 → 부채비율 상승 → 현금흐름 위축 → 운전자금 여력 압박이라는 예상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 2월 1조원대 돈을 들여 한화임팩트·에너지로부터 ‘값비싼’ 한화오션 지분을 사들였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한화에어로는 지난해 말 1조3750억원의 현금성자산이 있었으나 한화오션 지분을 사는 데 1조3000억원을 써 현금이 사실상 고갈됐다. ‘운전자금도 빠듯한데, 왜 내부 지분부터 샀을까’라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다만, 이 같은 설명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2024년 말 기준 한화에어로는 한화오션에 대해 연결 기준 약 34.7% 지분을 보유 중이었다. 이사회 통제권과 실질 지배력을 고려하면 지분 추가 매입 없이도 한화오션의 연결 종속회사 편입이 가능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올 2월 42%까지 지분을 추가 확보한 것은 연결 편입을 둘러싼 회계적 불확실성을 덜어내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연결 효과를 마냥 낙관하기 힘들단 시각도 적지 않다. 한화오션의 높은 부채비율과 실적 변동성, 낮은 수익성은 한화에어로 핵심 재무 지표를 희석시킬 수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한화오션을 연결 대상으로 편입하며 부채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봤다.
사정이 이렇자, 시장에선 한화에어로가 현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 2월에 한화오션 지분을 ‘비싸게’ 사들이고 연달아 3월 증자에 나선 선후관계를 의심한다. 시장에서는 한화임팩트와 한화에너지가 한화오션 주식을 팔아 남긴 차익이 향후 승계 과정에 쓰일 것이란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다. IB 업계 일각에선 한화에어로의 한화오션 지분 매입을 한화에너지 상장과 연결 짓기도 한다. 한화에너지 상장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다소 이례적인 작금의 상황을 두고 김동선 부사장을 배경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아워홈 인수로 현금 마련이 다급해져 한화에너지 상장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겼단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한화오션 주가 추이다. 올 초 3만원대 후반이던 한화오션 주가는 2월 초 6만원대까지 상승했다. 총수 일가 입장에선 한화오션 지분을 매각할 적기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오션 주가가 높을수록 한화에너지로 유입되는 현금이 늘어나 상장 때 기업가치를 평가받기에 유리하다.
한편, 최근 주주총회에서 나온 손재일 한화에어로 대표이사 발언에도 뒷말이 따랐다. 그는 주총에서 부채비율 상승 등으로 증자의 불가피성을 피력했지만, 앞서 일련의 의사결정을 짚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유증 명분이 ‘재무 구조 개선’이지만, 정작 한화오션 지분 추가 인수에 따른 현금 유출과 연결 실적 편입으로 부채비율은 더 올라갈 판이었다. 회계적으로 이미 재무 지표를 악화시켜놓고는 이를 개선하겠다고 증자하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논란 2. 증자 대금 용처 불투명
한화그룹 내부 지분 정리에 1조3000억원을 지출한 대목과 맞물려 한화에어로 증자 대금의 용처가 모호하다는 점도 의구심을 키운다.
다만,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 사용처를 명확히 밝힌 곳은 제한적이다. 현재로선 해외 조선에 배정한 8000억원을 호주 조선·방위 산업 기업 오스탈(Austal)에 투입한다고 밝힌 게 전부다. 이외 동유럽·사우디 지역에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겠다는 구상만 밝혔을 뿐 인수 대상 기업이나 인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타법인 증권 취득이 불발될 경우 2조4000억원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
한화에어로 증자를 두고 미덥지 못하단 평가가 많은 것엔 한화시스템 증자 사례가 깔려 있단 평가다. 한화시스템은 2021년 유상증자로 약 1조2000억원을 조달하며 도심항공, 위성통신 등 신사업 투자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듬해 대우조선 인수 컨소시엄에 5000억원을 출자한 사실이 알려져 자금 전용 의혹이 불거졌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유증 자금은 일반적으로 예치 계좌에서 목적 사업별로 분할 집행해야 하며 집행 내역은 분기별 공시 및 사업보고서에 밝히는 게 원칙”이라며 “하지만, 신사업 투자라는 목적 자체가 광범위하고 모호한 탓에 실제로는 타 사업으로 유사 목적 전환 여지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한화시스템이 벌여둔 신사업 투자 성적도 신통치 않다. 한화시스템은 2021년 1조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로 도심항공(UAM)·위성통신·디지털 플랫폼 등 신사업 투자를 공언했지만, 핵심 투자처 성적은 부진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역대급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주주 반발에 맞서 주주총회서 주가 부양을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주주총회서 발언하는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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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3. 시험대 선 DK 리더십
이번 증자 여파로 김동관 부회장 리더십도 시험대에 섰단 평가다. 김 부회장이 그룹 내 권한을 빠른 속도로 집중시키며 헤게모니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역할 충돌’ 우려도 고개를 든다.
김 부회장은 재계 3세 경영인 가운데 가장 공격적으로 지배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는 평이다. 2020년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으로 올라선 뒤 태양광 중심 포트폴리오 재편을 주도했고 이듬해 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 등 에너지·신사업 주도권을 가져왔다. 2022년엔 대우조선 인수 컨소시엄으로 방산·조선 핵심 권한을 확보한 데 이어 ㈜한화와 한화건설 합병으로 건설 사업도 영향력 아래 뒀다. 2023년 한화에어로 대표이사 선임으로 방산 컨트롤타워 사령탑에 올랐다. 이후 한화오션 지분 매입을 주도했고 최근 유증 발표 후 자사주 매입까지 숨 가쁜 행보를 보였다.
다만, 한화오션·한화에어로 사례처럼 지배력 강화를 위한 의사결정과 재무 안정성(주주·시장 신뢰 확보) 간 우선순위가 충돌할 때 전자에 주력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 점은 부담 요인이다.
재계 일각에선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에너지뿐 아니라 조선·건설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3형제 간 실질 분권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화그룹 안팎에선 김 부회장이 방산·조선·에너지 등 핵심 사업 영역을,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계열사를,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유통·로봇·반도체 계열사를 각각 승계받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명확히 결정된 것은 없다는 게 한화그룹 안팎 평가다. 가령, 한화 건설 부문은 김 부회장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도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해외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김 부회장 ‘친정’ 격인 한화솔루션도 ㈜한화 건설부문과 협업으로 건설업에서 영향력을 키운다. 김 부회장 외 두 형제는 아직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에도 오르지 못했다. 김 부회장에 비해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 입지가 탄탄하지 못하단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화그룹이 아워홈 인수에 나선 것도 김동선 부사장이 맡을 사업부문 체급을 키워 형제간 균형을 맞추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3호 (2025.04.02~2025.04.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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