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김연경. 한국배구연맹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등장부터 퇴장까지 단 한 순간도 부족함이 없었던, 또 한 명의 스포츠 레전드가 은퇴한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찬사를 받은 김연경(37·흥국생명)이 20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끝으로 8일 코트를 떠났다. 흥국생명이 이날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5전3선승제) 5차전에서 정관장에 세트 점수 3-2(26:24/26:24/24:26/23:25/15:13)로 승리하면서 우승컵과 함께 현역 생활을 마치게 됐다. 흥국생명은 2018∼2019시즌 뒤 6년 만의 통합우승.
1988년생인 김연경은 2005∼2006시즌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시쳇말로 리그를 ‘씹어 먹었다’.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을 따낸 데 이어 신인상과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를 쓸어 담으며 흥국생명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배구는 선수들 간 호흡이 중요하기에 신인 선수가 주전 경쟁을 뚫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 여자배구 역사상 신인 선수가 신인상과 정규리그 최우수선수를 딴 사례는 김연경이 유일하다.
데뷔뿐만 아니라, 그가 지나온 모든 발자취가 한국 배구의 새 역사였다. 소속팀 흥국생명을 3번이나 정규리그 정상에 올려놓고 2008∼2009시즌 뒤 임대 형식으로 일본 여자배구팀 JT 마블러스와 2년 계약을 했다. 조혜정 이후 두 번째이자 프로배구 출범(2005년) 이후 처음으로 국외리그로 진출한 여자 선수가 됐다. 2년 뒤에는 선진 배구를 체득하고자 유럽리그에 진출했다. 2012년 자유계약(FA) 신분을 놓고 흥국생명과 갈등을 빚었지만, 자유의 몸이 돼 튀르키예 페네르바흐체에서 7년, 중국리그 상하이 광밍유베이 등에서 활약했다.
태극 마크를 달고 한국 배구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17살의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선후배들과 함께 2012 런던올림픽(4위), 2016 리우올림픽(8강),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4위)에 출전해 전 국민에게 감동을 안겼다. 김연경은 도쿄 대회 때 세르비아와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소감과 함께 눈물을 쏟았다. 도쿄 대회를 앞두고 국내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고자 튀르키예 때 받은 연봉의 3분의1 수준(3억5000만원)으로 2020년 친정팀(흥국생명)과 계약을 맺었던 그는 2021년 올림픽 무대를 끝으로 태극 마크를 반납했다.
흥국생명 김연경. 한국배구연맹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 배구 역사상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친 김연경의 행보는 코트 밖에서도 빛났다. 그는 프로배구 남자부와 여자부 간 샐러리캡(각 팀이 선수들에게 지불할 수 있는 연봉 총액의 상한선) 격차를 처음 거론한 선수였다. 프로배구 출범 뒤 남자부의 샐러리캡 상한선은 항상 여자부보다 높았다. 한국배구연맹이 2018∼2019시즌 남자부 샐러리캡을 25억원, 여자부 샐러리캡을 14억원으로 확정하고 여자부의 경우 다음 시즌까지 동결하자 현역 선수 중 유일하게 쓴소리를 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자부와 여자부 샐러리캡이 너무 차이가 난다.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뒤처지고 있다. 이런 제도라면 나는 한국서 못 뛰고 해외에서 은퇴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부의 관중 동원력과 인기 등이 남자부를 턱밑까지 추격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샐러리캡 격차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 배구연맹은 2020년 4월 2020∼2021시즌 여자부 샐러리캡을 14억원에서 18억원으로 크게 올리고 옵션캡 5억원을 신설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국외 리그에 있었지만, 자국 리그 선후배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또 다른 김연경을 키우기 위한 작업에도 진심이었다. 2009년 한국 배구 선수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금 지원 사업을 펼쳤고, 2011년까지 20명의 학생 선수가 ‘김연경 장학금’을 받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있고,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있다. 김연경 장학생이었던 정지윤(현대건설)과 박정아(페퍼저축은행)는 도쿄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이기도 했다. 한동안 멈췄던 장학 사업은 최근 자신이 설립한 케이와이케이(KYK) 파운데이션을 통해 이어가고 있다.
팀의 우승을 위해 은퇴를 한 시즌 미뤘던 김연경은 은퇴를 선언한 2024∼2025시즌에도 여전히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올 시즌 득점 7위(585개), 공격 성공률 2위(46.03%), 오픈 공격 5위(36.43%) 등에 올랐다. 국내 선수 중 최고 기록이다. 등장과 퇴장 모두 강렬했던 그의 등번호 10번은 영구결번이 된다. V리그에서 영구결번은 오케이(OK)저축은행 로버트랜디 시몬,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김사니에 이어 3번째다. 큰 키(192㎝)에서 나오는 강력한 스파이크는 더는 코트에서 볼 수 없다. 하지만, 인생 2막에서 보여줄 스파이크가 남아있다. 참고로 김연경이 운영 중인 유튜브(식빵언니 김연경) 구독자는 116만명이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