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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다카이치, 일 애니 영웅들을 구할 수 있을까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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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 한 영화관에서 한 시민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귀멸의 칼날’ 포스터 옆을 지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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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석재 | 도쿄 특파원



    “됐으니까 닥치고 나한테 전부 투자해!”



    지난 1일 도쿄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행사.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거침없는 발언에 사우디아라비아 부호들은 박수와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이날 발언은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명대사다. 인류를 습격하는 초대형 거인과 싸우던 주인공 에렌이 주위 사람들에게 ‘힘을 빌려 달라’고 격정적으로 호소하는 장면에서 내뱉는 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재 일본 애니 인기가 높은 점을 계산해 준비한 것이다. 이어 그는 “일본이 돌아왔다. 투자해달라”는 말로 큰 호응을 끌어냈다.



    일본 역대 총리 중 비슷한 일로 화제를 모은 인물이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다. 그는 지난 2020년 국회 대정부 질문 때, 인기 애니 ‘귀멸의 칼날’ 대사를 따 “전집중 호흡으로 답변드리겠다”고 말했다. ‘전집중 호흡’은 이 애니에서 혈귀들과 싸우는 귀살대가 초인적 힘을 끌어올릴 때 쓰는 전투 기술의 하나다. 야당 의원 질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는데, 태도가 가볍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만화 사랑 끝판왕’으로 통하는 아소 다로 전 총리는 일본 애니·만화를 외교와 국가 홍보 수단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일주일에 만화 관련 서적을 10여권 읽고, 바쁜 선거철에도 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외무상 때이던 2007년 ‘일본 국제 만화상’을 신설하는 등 ‘만화 장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등에서 “일본 문화를 세계에 알릴 방법으로 애니와 만화를 생각했다”, “만화에는 일본을 움직일 힘이 있다”고 했다.



    일본 애니의 힘은 꽤 막강하다. 일본동영상협회(AJA)의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리포트 2025’를 보면, 지난해 일본 애니 산업 전체 매출 3조8407억엔(약 37조원) 가운데 수출이 2조1702억엔(20조4800억원)이나 됐다. 전년 대비 해외 매출이 26% 증가할 만큼 성장이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애니는 최대 해외 시장인 중국에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7일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자위대 출동 가능성’ 발언 이후 죄 없는 일본 애니가 ‘유탄’을 맞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극장판 ‘짱구는 못 말려’와 ‘일하는 세포’ 개봉이 돌연 미뤄졌다. ‘이웃집 토토로’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전시회, ‘세일러문’ 뮤지컬도 취소됐다. 지난달 상하이에서 유명 애니 ‘원피스’ 주제곡을 부르던 일본 가수 오쓰키 마키는 쫓겨나듯 무대에서 내려왔다. 다카이치 총리 이후 중국 정부의 ‘한일령’(限日令) 탓이라는 데 별로 이견이 없다. 섭섭한 것은 일본 쪽만이 아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 많은 중국 젊은이들은 일본 애니, 만화, 게임 등을 폭넓게 접하며 성장했다”며 “이들이 (중·일) 문화 교류에서 악영향을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때마침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엑스(X·옛 트위터)에 “ 만화 ·애니·게임 등을 만드는 일본 크리에이터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문화의 힘으로 국경을 초월하는 ‘연결’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자신의 ‘설화’로 촉발된 이 상황을 해결하고, 중국에서 퇴출 위기에 놓인 일본 애니 주인공들을 구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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