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2 (금)

    서로 사랑할 때 깨닫는 것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픽사베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예수는 ‘네 형제들을 네 목숨처럼 사랑하고 네 눈동자처럼 보호하라’고 말씀하셨다.(도마복음 25)



    분별심(ego)이 사라진 ‘하나의 생명’(참나)을 깨닫게 될 때 형제(참나)들을 목숨처럼 사랑하고 눈동자처럼 보호하게 된다. 바울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어둠에 있는 자요’(요한1서 2:9)라고 하여 우주에 충만한 ‘생명(참나)의 빛’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사물의 입자들은 상호 간에 그물망처럼 얽혀져 있는 하나이며(양자역학), 일체의 생명은 동일률의 생명이다. 우리는 천지와 내가 둘이 아니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본래 신(부처)과 둘이 아니라는 ‘하나의 생명’(참나)을 자각하여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 예수 그리고 인간이 모두 하나다’(요한복음 17:21)라고, 불경(佛經)은 ‘마음, 부처, 중생이 모두 하나다’(화엄경)라고 하여 평등 무차별한 ‘하나의 생명’(참나)을 설명하고 있다(一味平等). 모두가 신(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기에, 엑카르트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근거와 인간 영혼의 근거는 같다’고 하였다. 명상, 묵상을 통하여 이기적인 육의 ‘나’(거짓 나)를 소멸한 자는 생명인 영의 ‘나’(참나)를 찾게 되며(마 16:25), 형제(참나)들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의 본성(참나)이 사랑 자체임을 자각한 성(聖) 요한은 ‘신은 사랑이시다’(요한1서 4:16)라고 고백하였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나와 너’의 구별을 멈추게 하며, ‘하나의 생명’(참나)으로서 절대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한다. 신(부처)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전체로서 ‘하나의 생명’(참나)이다. 우주 전체는 바로 신(부처)의 몸이라고 하는 하나의 광대무변한 생명 덩어리이다. 신유학의 장재는 ‘모든 인간은 나의 형제요, 자매이며 모든 만물은 나의 동료다’라고 하였다. 모든 영혼을 1인칭 단수(참나)로 체험하는 자만이 형제(참나)들을 목숨처럼 사랑하게 된다.



    신은 모든 것이다(에베소서 4:6). 나도 본래 신(부처)이며,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우파니샤드). 모든 사람은 이미 신(부처)의 생명으로서 구원받고 있다. 예수는 ‘모두가 다 하나다’(요한복음 17:21)라고 하는 ‘하나의 생명’(참나)을 깨닫도록 기도하셨다. 나 자신, 즉 생명(참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우주는 ‘하나의 생명 에너지’(참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양자역학). 그러므로 나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의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다른 누구 아닌 나를 미워하는 것이 된다.



    예수는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 버리라’(마태복음 5:29-30)고 말씀하셨다. 현상(허상)을 있다고 보는 에고(거짓 나)의 눈을 빼어버리면 너와 나가 하나인 ‘생명(참나)의 눈’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때 자기와 육체를 동일시하는 에고가 소멸하게 되며,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모든 고통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 예수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한복음 15:5)고 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의 생명’(참나)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하며, 만일 우리가 형제(참나)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참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한1서 4:12).



    사도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8)고, 장자(莊子)는 ‘참된 자기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제물론)고 하였다. 그들은 ‘보이는 이 세상은 허상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참나)은 실재한다’(진공묘유)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우주에 실재하는 것은 오직 생명(참나)뿐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보이지 않는 생명(참나)을 보면 이를 일컬어 깨달음이라고 하였다(도덕경 52장). 모든 사람을 자기의 형제(참나)로 볼 수 있다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대자대비).



    따라서 모두는 오직 한몸이다(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오직 ‘하나의 몸, 하나의 생명’(참나)을 자각한 자는 형제(참나)를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모든 사람의 겉모습은 다르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별하는 에고(이원성)의 꿈에서 깨어난 후 ‘모두를 하나로 보는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생명(참나)의 빛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이때 ‘나와 너는 별개다’라는 이분법적 사유(ego)가 사라지고 ‘하나의 생명’(참나)으로서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종교의 외형상, 현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진리(생명)는 하나이다(不二). 불교에서 ‘우주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고, 도교에서 ‘하나를 얻으면 만사가 끝난다’고, 유교는 ‘오로지 한결같이 하여 중용의 도를 지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우리 종교만 진리(생명)다’라고 하는 독점적 배타성을 벗어나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





    구자만(신학박사·개신교 장로·신흥지앤티 회장)



    [끝나지 않은 심판] 내란오적, 최악의 빌런 뽑기 ▶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