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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사설] 민가협 40주년, 민주유공자법 제정 늦추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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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1996년 8월8일 민가협 주관으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양심수 석방을 위한 캠페인에서 참가자들이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거리행진을 벌이다 경찰의 저지를 받자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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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가 12일로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민가협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치하에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목숨을 잃거나 투옥된 이들의 가족들이 민주화운동 탄압에 맞서기 위해 1985년 결성한 모임이다. 감옥에 갇힌 혈육을 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온몸 바쳐 싸운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들이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헌신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간첩조작과 고문 수사가 횡행하던 시절 민가협은 간첩조작 피해자를 조사하고 고문 수사관을 고소·고발하는 등 철옹성 같던 공안통치에 균열을 냈다. 당시로선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았지만 이후 민주화와 함께 수백명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사상전향과 준법서약서처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을 폐지하는 성과도 거뒀다. 독재 체제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한 가족들이 민주화운동의 가장 치열한 현장에서 흘린 피와 땀은 민주주의가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든든한 토양이 됐다.



    그러나 1970~80년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많은 시민·노동자·학생들과 그 유가족에 대해 여전히 합당한 예우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문과 최루탄에 숨져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됐던 박종철·이한열 열사도 민주유공자로 예우받지 못하는 현실은 수십년의 민주화 역사를 부정하는 듯하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국가·민주유공자로 예우하는 법이 마련됐지만, 그 밖에 수많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예우하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아직도 제정되지 못했다.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지난 9월 새 국회에서 다시 발의돼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상태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번 법안은 희생도가 높은 사망·행방불명·부상자 634명을 대상으로 하고 지원 폭도 요양·의료 등으로 최소화해 명예를 되찾아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국민들도 충분히 공감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12·3 내란을 시민들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숱한 희생 위에 쌓아올려진 민주적 성취와 시민의식 덕분이었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은 민주주의 가치를 더 깊이 새기고 더 튼튼한 기반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민주유공자와 그 가족들은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고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법 제정을 하루라도 앞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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