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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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기술교육원을 수료하고 첫 출근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거제도민에겐 취업 전 마지막 휴가겠지만 타지인에겐 그저 집 구하러 돌아다닐 시간이었다. 내 고려 사항은 단 하나, 회사 사무실과 최대한 가까운 거리. 아직 일 시작도 안 했지만 벌써 퇴근 시간 내 모습이 그려졌다. 분명 너무 힘들어서 온몸을 흐느적대며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겠지. 글 쓸 체력이 남으려면 출퇴근에 힘과 시간을 덜 들여야 했다.(곧 조선소 탑재 공정은 퇴근할 힘도 안 남는 중노동임을 깨닫게 된다.) 조선소를 한바퀴 다 돌려면 천천히 달려도 약 한시간. 이렇게 넓은 반면 출입구는 다섯개뿐. 사무실이 문 근처에 서 있지 않은 한, 아무리 조선소 근처에 방을 잡아도 완벽한 의미의 직주근접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가까운 장소는 서문 근처. 다행히 월셋집 매물은 넘쳐났다. 부동산 앱으로 알게 된 중개사님 또한 친절해서, 방 여러개 보여줄 테니 제일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라보라 했다. 목에 걸친 감색 스카프가 인상 깊은 중년 여성이었다. 본인도 남편이 협력업체 노동자라고 했다. 중개사님이 모는 모닝 옆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 빌라 건물주들 다 대우조선 원청 은퇴한 사람들이에요. 내국인 들어온다고 하면 좋아할 거야. 외국인 애들은 한방에 여럿 살아서 골치 아파하거든. 월세도 제때 잘 안 내고.”
그간 빌라 월세는 조선소 경기를 따라갔다고 했다. 옥포엔 들개나 길고양이도 만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2010년쯤엔 보증금 300에 월세 50, 60만원 수준. 대우조선 분식회계 사태 이후 2017년쯤엔 보증금 없이 월세 2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요즘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 선. 방 나가는 비율이 늘어나긴 했는데 체감상 외국인 입주가 3할은 되어 보인다고 했다. 예전엔 회사가 잘 벌면 월급봉투도 굵어졌는데 이젠 아니다. 집에서 먹고 자야 할 노동자 지갑이 얇아서 월세도 못 올린다. 이러다 거제 망하겠다고 얘기하는 중개사님 옆에서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실제로 한화오션의 주가는 계속 오르고 있지만 거제 거리는 한산했다.
직접 방문한 빌라 매물은 꼭 하나씩 하자가 있었다. 아주 좁거나, 옵션이 터무니없이 적거나, 너무 높은 곳에 있거나, 월세가 미묘하게 더 비싸거나 했다. 마침내 찾은 다섯번째 빌라는 내 마음에 꼭 맞았다. 책상과 소파가 남아 있었다. 티브이가 있었고 인터넷도 무상. 주차할 자리도 많았다. 서문과 거리도 가장 가까워서 거래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계약서 작성을 끝마쳤다. 중개사님은 비상 키를 건네며 말했다.
“꾀실하이 일하세요. 초보들이 제일 많이 다쳐. 신입 때 열심히 해봐야 돈 더 안 줘요.”
방에 짐을 푼 다음, 서문에서 입사 예정인 업체의 경리과장에게 출입 카드를 받았다. 카드를 수령하고 가장 먼저 보러 간 곳은 사내 헬스장. 서문 식당 바로 위층에 있던 운동실은 의외로 기구를 충실히 갖추어 놓았다. 트레드밀도 다섯대, 스미스 머신, 케이블 머신까지, 적당히 근육 유지할 정도 운동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곧 조선소 탑재 공정은 운동할 힘도 안 남는 중노동임을 깨닫게 된다.)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8할이 외국인이었다. 자리 남는 기구나 깔짝대면서 운동을 끝마쳤다. 곧바로 자취방에 쓸 가정용품을 사러 갈 생각이었다. 다이소에서 대충 사면 되겠지. 오판이었다. 다이소는 상당히 멀었다. 서문은 사전 그대로 의미의 베드타운. 시설이라곤 배달음식점 몇곳과 편의점이 고작이었다. 동네 카페도 다 폐점해서 비싼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장 가까운 다이소 옥포점도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이참에 옆 동네 산책이나 해보잔 생각으로 운동화 신고 패딩을 입었다. 옥포항을 거쳐 국제시장에 들어서자 옥포동의 별명이 새삼 와닿았다. ‘거제 이태원’,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거니와 국적도 다양했다. 대부분 동남아인이었지만 유럽인도 많이 보였다. 주로 배를 주문한 선주사에서 파견한 이들이었다. 마침 아르메니아계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정육점 앞에 서서 우두커니 진열장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쇄기가 냉동육 갈아내는 소리로 온통 시끄러운 와중에 주인장이 나와 큰 소리로 물었다. “비프!? 포크!?”, “삼켭살 일 큰!!”, “한국말 해요!?”, “쵸큼요!!”, 다른 가게도 대부분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다. 외국인 손님이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상인들은 서툰 영어나 접속사 싹 뺀 단어, 거기에 손짓이며 발짓까지 다 동원해 응했다.
시장을 빙 둘러 다이소 옥포점에 도착. 안쪽은 그야말로 글로벌 놀이터였다. 총 4층까지 이어진 대형 매장이었는데 층층마다 뽈뽈거리는 아이와 부모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일회용품 몇개만 사기로 했건만.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대형 봉투 한아름을 안고 귀가하고 있었다. 숙소 마련을 하루 만에 몰아치고 운동까지 하고 나니 온몸이 축 늘어졌다. 만취 직전까지 술을 때려 붓고 잠들면 알찬 하루가 될 듯했다. 맥주 사러 서문 앞 편의점으로 갔다. 오후 아홉시 무렵, 칼바람이 몰아치는 야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작업복 차림으로 가성비 맥주 필라이트를 쌓아놓고 마시는 중이었다. 오고 가는 언어를 듣자 하니 타이인들이었다. 나무 탁자엔 안주 대신 딸랑 재떨이만 놓인 채였다. 고국에 송금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이들에겐 이 ‘깡술’마저 꽤 큰 사치였으리라. 맥주 사는 김에 한봉에 천원짜리 번들 과자를 사서 허허벌판인 탁자 한가운데 갖다 놓았다. 일제히 동그랗게 눈 뜬 채 멀뚱한 시선을 보내왔다. 영어로 멋들어지게 “안주 없이 마시면 속 배려요, 이거랑 같이 먹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선 “비어 스낵, 비어 스낵”, 옹알이 비슷한 단어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들 반응이 없자 머쓱해졌다. 마침 담배를 물고 있던 노동자 한명이 물었다. “코리언?”, 고개를 끄덕였다. 몸짓에 더해 “다들 타국에서 일하느라 힘들죠?”라고 유창하게 화답하고 싶었지만, 머리에서 간신히 떠올린 단어는 고작 “땡큐 포 워크”였다. 그제야 다들 깔깔 웃어 재끼며 엄지를 추켰다. 그래. 말이 서툴면 어때, 뜻만 통하면 됐지. 다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요.
천현우 | 창원시에서 여러 회사 전전하며 10년간 제조업 노동자로 일했다. 서울 성수동 미디어플랫폼 얼룩소(alookso) 등에서 2년 반 일하다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최근까지 거제 조선소에서 일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을 했다. 산문집 ‘쇳밥일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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