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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무 “항복 아니다” 설득... 트럼프 관세유예 급반전 18시간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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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난 며칠동안 생각한 것” 발표

공화 의원들, 잇따라 반대 의견 밝혀

트럼프, 국채 수익률 급등에 “사람들 불안해 해”

WP, ‘보복 관세’ 주춤하기까지 18시간 재구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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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전쟁에서 먼저 눈을 깜빡거렸다.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은 “트럼프가 지금으로선 관세를 놓고 다시 주춤했다(Trump blinked on tariffs, again, for now)”라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주춤했지만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Trump blinked. Danger remains)”라는 제목을 뽑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미국의 보복성 상호관세가 발효(發效)된 지 수 시간이 지나서, 한발 물러선 것일까. 물론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이 모든 게 처음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었고, 어느 누구도 트럼프 대통령만큼 협상의 지렛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자신도 9일 오후 2시쯤 중국을 제외한 75개국에 대한 상호 보복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기로 발표한 뒤 “지난 며칠동안 생각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종 ‘유예’ 결정에 대해 기자들에게 “아마 오늘(9일) 아침 일찍 정리된 것 같다. 변호사 도움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썼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꽤 오랫동안 진행됐고, 이제 방아쇠를 당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늘 실행했고, 우리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주가 지수인 S&P 500 지수가 1주일 만에 12% 빠졌을 때에도 트럼프의 참모들은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백악관의 한 고위 참모는 미국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재편하려는 “트럼프의 구상을 월스트리트는 이해 못해도, 메인스트리트(미 중소도시 상가 거리)는 여전히 지지한다”고 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이 9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 명령과 포고문에 서명하는 동안 뒤에 배석해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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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500대 글로벌 기업의 주가 동향을 보여주는 S&P 500 지수의 지난 1개월 동향.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 트럼프는 부분적으로 물러섰다. 중국에는 모두 1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지만, 한국을 비롯한 75개국에는 일단 기본관세 10%만 물리기로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급반전’이 있기까지 18시간 동안, 즉 8일 저녁 8시부터 발표가 있었던 오후 1,2시까지 대략 18시간 트럼프와 참모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추적했다.

트럼프는 8일 밤 9시 폭스뉴스의 시사 뉴스 프로그램인 션 해니티 쇼를 시청했고, 프로그램이 끝나자 곧 그 방송에 출연했던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한 시간 넘게 전화 통화를 했다. 이들 의원은 방송에서 관세 전쟁에 우려를 표하며, 트럼프가 다른 나라와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모두 트럼프가 이 방송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쇼에 출연했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트럼프와의 늦은 밤 통화에서 “결정은 당신이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한 성과를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관세를 유지하면 상대의 관세 보복을 초래할 것이고, 이는 미국 전체와 특히 텍사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한 그날 밤 미 재무부 발행 국채 시장의 흐름도 지켜봤다. 트럼프는 9일 오후 “사람들이 조금 불안해하더군요”라고 말했다.

9일 오전, 트럼프는 상원 공화당 원대대표인 존 튠과 만났고, 스위스 대통령 카린 켈러-슈터와도 통화했다. 스위스는 이날 0시를 기해 31%의 상호 관세 폭탄을 맞았다. 켈러-슈터 대통령은 25분 간 통화에서 스위스 경제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며, 조치 완화를 요청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전 8시 JP모건체이스의 CEO 회장인 제이미 다이먼이 폭스뉴스에 나와 말하는 것도 시청했다. 다이먼은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한 경기후퇴(recession) 가능성을 경고하며, 자신이 아는 거의 모든 이가 소비와 투자 활동을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진전이 없으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아침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는 “진정하라 (BE COOL!)”는 메시지를 올렸다. 몇 분 뒤에는 “지금이야말로 최고의 매수 타이밍이다!”라고 또 올렸다.

백악관이 9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X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상호관세유예 메시지.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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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유럽연합(EU) 최고 무역대표인 마로스 세프코비츠의 전화를 받았다. EU는 전날 트럼프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州)들의 주력 상품인 콩ㆍ아몬드ㆍ소고기ㆍ담배ㆍ목재ㆍ요트 등에 대한 보복 관세 조치를 승인했다.

그리고 9일 정오쯤, 러트닉 상무장관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트럼프와 함께 오벌오피스에서 ‘깜짝’ 발표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임기 중 가장 놀라운 트루스소셜 게시물 중 하나”(러트닉 표현)의 문구를 작성하는 자리였다. 원래 이날 오전엔 NSCAR(미국 자동차 경주) 우승자들과 만나기로 돼 있었지만, 백악관 참모들 집무실인 웨스트윙의 TV에선 경제 불안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오후 1시18분(한국시간 10일 오전 2시18분),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관세를 125%로 올리지만, 반대로 나의 강력한 의사 표명을 따라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고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밝힌 75개국에 대해선 90일 간의 보복 상호 관세 유예를 승인한다”고 트루스소셜에 게재했다.

그는 이후 백악관 잔디밭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람들이 좀 지나치게 흥분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다른 나라들로부터 엄청난 (협상) 의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아무도 가능하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것을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참모들은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고 서둘러 밝혔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비서실 차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터 전략, 대담한 지도력, 탁월한 전술로 수십 년 동안 누구도 이루지 못한 국제무역 개혁을 단 며칠 만에 이뤄내고, 경제 침략의 글로벌 주범인 중국을 경제ㆍ정치적으로 고립시켰다”고 소셜미디어 X에 썼다.

그러나 백악관 내부에서도 일부 고위 관리들은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입장 선회에 당황했다.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에 ‘관세 일시 유예’를 게시하자, 참모들은 향후 이를 어떻게 진행할지를 놓고 분주히 움직였고, 급히 베센트와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과 논의해 잔디밭 브리핑을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 시각 9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 명령에 서명하며 연설하고 있는 가운데 (왼쪽부터)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더그 버검 내무장관, 션 더피 교통장관, 매트 홀 미시간 하원의장 등이 경청하고 있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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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캐나다와 멕시코가 10% 기본 관세의 적용을 받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팩트에 대해서조차 이날 브리핑에서 설명할 수 없었다. 나중에 백악관 측은 두 나라는 기존에 부과한 25% 관세가 계속 적용된다고 밝혔다.

◇2001년 이래 최고 기록한 미 국채 수익률도 한몫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재무부발행 10년 만기 채권 수익률이 9일 한때 4.47%까지 치솟으며 2001년 이후 3일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한 것도 ‘90일 관세 유예 결정’의 한 원이 됐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주요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 하락도 맞물려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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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기, 30년 만기 미 재무부 발행 채권의 최근 수익률 동향. 미 언론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국채 수익률이 치솟자, 결국 트럼프가 시장에 굴복했다고 보도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자금이 미 국채 시장에서 빠져나가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채권 수익률은 그 반대로 상승한다. 이는 전세계 투자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 통상적으로 보이던 현상과는 정반대로, 안전 자산인 미 국채에 대해서도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은 수조 달러의 부채를 국채를 통해 조달한다. 따라서 미 국채에서 이탈하는 움직임이 확산된다면, 이는 일부 투자자들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시티그룹의 금리 전략가 벤 윌트셔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번 매도는 미국 국채가 더 이상 글로벌 채권시장의 ‘안전 자산’이 아니라는 체제 변화(regime shift)를 시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국채 수익률은 또 미국의 시중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장기주택담보대출(mortgage)금리가 다시 7%를 넘어서고, 자동차·기업 대출 등 전반적인 차입 비용이 치솟게 된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채 수익률의 하락을 트럼프 경제의 성공 결과로 자축했지만, 이제 “막대한 레버리지(대출해서 투자 규모를 키우는 것)를 사용하던 플레이어들이 디레버리징(deleveragingㆍ대출을 상환하고 채권 자산을 줄이는 것)를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스, BBC 등은 90일 관세 유예 결정은 “결국 트럼프는 혼돈에 빠진 채권 시장에 굴복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로선 2022년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가 대규모 감세(減稅)과 대규모 정부 차입을 함께 추진했다가 영국 채권 시장의 붕괴를 맞고 굴욕적으로 사임했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지난 6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로 떠나기에 앞서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과 얘기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베센트는 마러라고에서 트럼프에게 '관세 유예'를 설득하고 함께 워싱턴 DC로 돌아왔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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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센트 재무, “유예가 항복 아니다” 트럼프 설득

월스트리트저널은 베센트 재무장관이 미국의 일방적인 ‘상호 관세’ 발효 시점을 앞두고 각국 지도자와 월스트리트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고, 트럼프를 설득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보도했다.

베센트는 6일 플로리다 마러라고 휴양지에서 트럼프와 함께 보내며 “관세 부여 유예를 하면 각국과 수많은 무역 딜을 하게 되므로 결코 ‘항복’이 아니다”고 설득했다. 트럼프로부터 외국에서 미국과 무역 협상을 하겠다는 의사가 쇄도한다는 사실을 발표하라는 승인을 받았다.

베센트는 트럼프와 함께 월요일인 7일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으로 워싱턴 DC로 돌아왔고, 트럼프에게 ‘협상’에 초점을 맞추라고 계속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베센트 재무장관은 트럼프의 무역ㆍ관세 정책 참모 중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반면에,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강력한 고립주의자로 이번 보복 관세 정책을 주도했던 피터 나바로 고문은 9일 ‘유예’ 논의와 발표에서는 완전히 빠졌다.

피터 나바로 무역 및 제조업 담당 고문이 9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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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로는 백악관 외부에서 폭스 비즈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사안에서 자신이 배제되지 않았다며, 이날 ‘유예 결정’을 “아름다운 협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러트닉 상무장관, 베센트 재무장관과 몇 년째 완벽한 팀워크를 이루고 있으며, “한 팀, 한 목소리”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9일 오후 대통령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갑자기 유예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협상(a negotiation)이란 게 말이요. 많은 경우 어느 순간까지는 아닌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협상이 되는 거요.”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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