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쿠폰의 원형은 ‘스탬프 북’이다. 미국 기업인 스페리 앤 허친슨(S&H)은 19세기 말부터 소매 유통업체와 제휴해,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금액에 따라 스탬프 북에 붙일 수 있는 작은 우표를 제공했다. 우표를 충분히 모으면 전용 매장에서 토스트기나 믹서기, 식기 세트 등과 교환할 수 있었다. 어차피 구매할 제품이라면 우표를 받을 수 있는 소매점에서 사자는 고객들의 호응이 뒤따랐다. 충성도 마케팅의 초기 성공 사례다.
우리나라 배달 음식점들도 다르지는 않았다. 중국집이나 족발집에서 쿠폰을 몇 장 받아두면, 받은 쿠폰이 아까워서라도 그 가게에서 몇 번 더 시키게 마련이다. 그런 인간의 오랜 심리가 바뀐 것도 아닌데, 배달 음식점 쿠폰이 점차 사라지는 건 엉뚱하게도 배달 플랫폼 때문이다.
배달 플랫폼이 대중화되자 직접 가게에 전화해 배달을 요청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이 됐다. 전화 주문은 어려우니 플랫폼으로 주문해 달라며 손사래를 치는 곳마저 있다. 재주문을 위해 일종의 할인을 제공하는 쿠폰 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는 셈이다. 대신 그 비용은 모두 플랫폼에서 노출도를 높이기 위한 광고비로 지출되고 있다. 오랜 단골 혜택이 플랫폼으로 빨려 들어간 셈이다. 배달 앱 덕분에 얻은 편리함은 크지만, 가게와 소비자 모두에 썩 바람직한 결과는 아닐 테다.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 마케팅 시대에 낡아버린 쿠폰 제도를 아쉬워하는 게 우스울지는 모르지만, 예전엔 쿠폰을 모아 주문할 때 그 가게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도 했다. 많이 시켜주셔서 감사하다며 덤을 얹어주는 집도 있었다. 쿠폰 주문이라며 평소보다 양이 줄어드는 집이 있다면 다음번엔 또다시 고를까. 플랫폼 별점만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는 세상에서 과거의 지혜가 되어버렸기에 더욱 슬프다.
[박한슬 약사·‘숫자한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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