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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조선업 외국인 비자 폐지 논의에… 업계 “그들 아니면 누가 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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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업 인력난] 고용부 내일 심의, 조선업계 비상

    조선일보

    지난 5월 울산 HD현대중공업 건조2부 선체1팀에서 일하는 내·외국인 근로자들의 모습. 최근 정치권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조선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지나치게 많아, 내국인 채용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조선업계에서는 “청년들이 기피해온 현장을 지탱해온 외국인 노동자를 앞으로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할 경우 우리 조선업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HD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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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대조립 작업장(야드)에선 안전모를 쓴 직원 20여 명이 “안전, 좋아!” 구호를 외쳤다. 이 중 15명 이상은 태국 등지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작업장 내 소지품 보관함에도 ‘이지스’ ‘두민다’ ‘야데히’ 같은 외국인 직원 이름표와 한국인 직원 이름표가 섞여 붙어 있었다. 현장에선 번역기 앱을 켜고 대화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경남 거제도 작업장도 마찬가지다. ‘다국적 조선소’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최근 수년간 조선업 부활의 한 축이었던 외국인 인력 수급에 제동이 걸릴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조선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도입했던 ‘외국인 비자 쿼터’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조선 업계는 “3D 업종을 기피하는 내국인을 대신해 현장을 지켜온 외국인마저 끊기면 수주 물량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전용 쿼터 폐지 검토하는 정부

    19일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심의위원회는 ‘E-9(비전문 취업) 조선업 전용 쿼터’ 폐지 여부를 논의한다. 정부는 사실상 폐지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E-9 조선업 쿼터는 단순 기능 외국인력을 위한 E-9 비자(올해 기준 13만명)에서 조선업 몫을 따로 정한 것으로, 2023년 극심한 조선업 인력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도입 첫해인 2023년과 지난해에는 연속으로 5000명이 배정됐고, 올해는 2500명의 쿼터가 주어졌다.

    현재 조선소 외국인 노동자의 약 80%가 이를 통해 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 도입 이후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의 외국인 인력 비율은 2021년 5%(4640명)에서 작년 18%(2만200명)로 급증했다. E-9 조선업 쿼터는 외국인들이 조선 분야 숙련공(E-7)으로 전환하는 사다리 역할도 해왔다.

    고용부는 “이미 조선소 인력이 충분히 충원됐고 현재 쿼터 소진율도 3분의 1 수준이라 연장할 명분이 약하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와 지역 정치권도 쿼터 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다. 명분은 ‘내국인 역차별’과 ‘낙수효과 부재’다. 조선사 노조들은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으로 급여를 주는 외국인을 언제든 뽑을 수 있다 보니, 조선 빅3가 조선소 노동자들 임금이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고 주장한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잠식하고, 조선소 전체의 임금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변광용 거제시장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청년 고용이 축소되고 숙련 일자리가 감소한다”며 외국인 비자 축소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역 상권의 불만도 거세다. 거제의 외국인 근로자는 3년 새 3배(5410명→1만5790명)가 됐지만, 이들이 월급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탓에 지역 소비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올 2분기 거제 상가 공실률은 35.1%로 전국 2위를 기록했다.

    ◇ 업계 “그들 없으면 일감 소화 못 해”

    구인난에 허덕이는 조선업계는 “여전히 사람이 부족하다”며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용접, 도장 등 내국인이 꺼리는 고된 업무를 도맡은 덕분에 조선업은 수주 잔고가 135조원에 달해 2028년까지 물량이 확보된 상태라는 것이다.

    HD현대의 경우 최근 사우디, 페루, 인도 등에 현지 조선소를 짓고 미국 기업 등과도 함정 공동 건조에 나서는 등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확장범위가 커질수록 인력이 그만큼 더 필요하다는 뜻이라, 외국인 근로자 수요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늘 수밖에 없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일감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인력 이탈이다. 조선업 전용 쿼터가 사라져 일반 제조업 비자로 통합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힘들고 위험한 조선소 대신 업무 강도가 낮은 일반 공장으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조선사들은 외국인 노동자 쿼터가 축소돼도 용접, 도장 같은 업종은 내국인이 기피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지역으로 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을 줄인다고 해서 청년들이 힘든 조선소로 오지는 않는다”며 “조선업 쿼터는 외국인 인력을 조선소에 묶어두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내년에는 LNG선보다 노동력이 더 많이 투입되는 컨테이너선 건조가 늘어날 예정이라 외국인 인력 공백의 타격은 더 클 전망이다. 한미 조선업력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재건)를 계기로 한 ‘K-조선 르네상스’도 외국인 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호소다.

    ☞E-9·E-7·광역형 비자

    E-9(비전문취업) 비자 :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따라 제조업 및 농축산업 등에서 단순 노무 분야에 종사할 외국 인력에게 발급하는 비자다. 가족 동반이 제한되고 사업장 이동도 규제를 받는다.

    E-7(특정활동) 비자 : 법무부가 지정한 전문 분야의 우수 외국인에게 주는 비자다. 학력 및 경력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광역형 비자 : 인구 감소 위기를 겪는 지자체가 추천한 사람에게 법무부가 비자를 발급해 그 지역에 거주하고 취업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역 정착을 조건으로 비자 요건을 완화한 게 특징이다.

    [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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