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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오른손 없이 태어난 英 왼손 피아니스트 “‘No’가 내 삶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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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내한 공연 니컬러스 매카시

    예술의전당서 라벨 ‘왼손 협주곡’

    “한손으로 양손의 환상 빚는 게 매력”

    조선일보

    28일 예술의전당에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협연하는 영국 왼손 피아니스트 니컬러스 매카시. “수없이 거절당했지만 그때마다 강인해졌으니 결국 내 삶에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니컬러스 매카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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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피아니스트 니컬러스 매카시(36)는 오른손 없이 태어났다. 어릴 적 정식으로 악기를 배운 적도 없었다. 오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는 그는 최근 영상 인터뷰에서 “가족 중에 음악인도 없었고 부모님도 모두 판매업에 종사하시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다. 지극히 ‘비음악적(unmusical)’인 아이였다”며 웃었다. 어릴 적 꿈은 요리사. 그는 “한국 같은 아시아나 이탈리아 음식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열네 살 때 학교 강당에서 친구가 들려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했다. 친구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에 감동해서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 그의 고집에 부모님은 중저가 전자 건반을 사주었고, 그때부터 악보를 보면서 독학하기 시작했다. 매카시는 “그랜드 피아노를 놓을 만큼 집이 넓지 않아서 방 안에 건반을 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아주 느린 속도로 따라서 쳐본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동네 학원에 찾아갔지만 시련이 없을 리 없었다. 그는 “학원 선생님께서 ‘음계는 제대로 칠 줄 아느냐’고 물으시더니 레슨을 거절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신체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기에 오히려 내면적으로 강인해질 수 있었다. ‘노(No)’라는 부정적 반응이야말로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결국 길드홀 음악 학교를 거쳐서 영국 왕립 음악원에 들어갔다. 이 음악원 130여 년 역사상 첫 왼손 피아니스트 졸업생이었다.

    졸업 직전에 장애 음악인들로 구성된 영국 패러오케스트라(Paraorchestra)에 창단 멤버로 들어가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폐막식에서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연하면서 세계적 주목도 받았다. 그는 “8만여 명의 관중 앞에서 연주한 것이 데뷔 무대가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그 뒤에도 그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연주한 적은 없었지만…”이라며 웃었다. 당시 무대를 계기로 피아노 독주자로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2015년에는 세계적 음반사 워너 클래식스를 통해서 데뷔 음반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왼손 피아니스트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1887~1961)이 그의 음악적 우상이자 모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논리 철학 논고’를 쓴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친형이다. 파울도 어릴 적부터 음악 영재로 주목 받았지만 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총상으로 오른팔 절단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에도 작곡가 라벨 등에게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꾸준하게 위촉하고 연주했다. 매카시는 “오른손 없이 태어나는 것도 무척 힘들지만 오른손을 잃는 건 더욱 충격이 컸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무대에 복귀한 의지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28일 ‘고잉홈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기교적으로도 까다로운 곡으로 꼽힌다. ‘고잉홈 프로젝트’는 국내외 악단에서 활동하는 전현직 단원들이 뭉친 오케스트라다. 매카시는 “다섯 손가락으로만 연주하지만 양손으로 연주하는 듯한 청각적 환상(illusion)을 빚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곡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왼손 피아니스트들에게 새로운 작품은 ‘보물 찾기’와도 같다. 그렇기에 파울 비트겐슈타인처럼 꾸준하게 신곡을 위촉하고 연주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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